[비즈체크 = 박용설 역사 칼럼니스트] 1795년 파리의 가을은 혁명의 불길이 채 가라앉지 않은 혼돈의 시기였다. 젊은 장군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스물여섯의 패기 넘치는 청년이었다.
그는 가난한 코르시카섬 출신이었지만 엄청난 독서량과 영민함이 번뜩이는 지략과 불타는 야망으로 프랑스 군부의 실력자로 커나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약점은 사회적 신분이 별 볼일 없다는 것 이었다.
당시 프랑스 사회에서 성공하려면 실력뿐 아니라 사교계에서 고귀한 인맥과 세련된 매너는 필수 였다. 인맥이 없는 나폴레옹은 사교계를 기웃거리기 시작하였는데 세련됨과는 거리가 먼 촌티가 줄줄 흘렀다.
그 무렵 파리 사교계를 주름잡던 여인은 ‘조세핀 드보아르네’라는 서른두살의 우아하고 매혹적인 미망인이었다. 그녀는 귀족 출신이었는데 남편을 단두대에서 잃고 두아이를 홀로 키우며 살아가고 있었다. 타고난 재치와 미모, 세련된 감각 덕분에 사교계 수퍼스타로 군림하고 있었다. 그녀의 교양있는 말솜씨와 치명적인 매력은 수많은 남성들을 사로 잡았고 나폴레옹 역시 그녀의 매력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조세핀 드보아르네
나폴레옹은 그 조세핀에게 한눈에 “뿅!” 갔다. 그는 그녀에게 불같은 연서를 보내며 자신의 사랑을 고백했다.
“당신을 처음 본 순간부터 내 심장은 불길에 휩싸였소!.”
“조세핀! 당신 없이는 단 하루도 살 수 없소!”
편지는 뜨거웠지만 조세핀은 차가웠다. 여섯 살 연하의 이 젊은 장군이 자신에게 빠진 것을 알았지만, 키 작고 촌스러운 나폴레옹에겐 관심조차 없었다.
그러나 나폴레옹은 무시 당했지만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매일같이 뜨거운 편지를 써서 조세핀에게 보냈고 “내 심장은 조세핀을 위해 뛴다!”라는 문구로 애절한 감정을 쏟아 내며 적극적 애정 공세를 멈추지 않았는데, 한마디로 무데뽀 정신으로 돌진했지만 돌아오는건 감감 무소식 이었다.
하지만 나폴레옹은 조세핀이 받아주지 않는 사랑을 한탄하는 대신 포탄이 쏟아지는 전선에서 검을 휘두르며 승리를 쟁취했고 그의 이름은 프랑스 전역에 울려 퍼졌다.
나폴레옹은 일약 프랑스의 새로운 영웅으로 떠오르며 사교계 최고의 핵인싸로 컴백한다.
이제 나폴레온은 사랑을 구걸하는 애송이 장교가 아니라 그녀 조차 놓칠수 없는 상남자가 되어 가고 있었다. 뜨거운 연서보다 전쟁터에서 이룬 승리가 조세핀의 마음을 서서히 열기 시작한 것이다.
마침내 두 사람은 1796년 3월 파리에서 결혼식을 올리기로 하였다. 하지만 조세핀은 결혼식날 늦잠을 자고 말았다. 약속된 시간보다 한참 늦게 도착한 그녀를 기다리며 나폴레옹의 속은 새카맣게 타들어 갔지만 결국 그녀를 향한 사랑이 더 컸기에 용서 했다.
결혼후 나폴레옹은 이탈리아 원정을 떠났고 전장에서 연전 연승 한다.
그는 먼 원정중에 하루도 빠짐없이 조세핀에게 편지를 보냈다.
“당신을 보지 못한지 단 사흘이 지났을 뿐인데 마치 삼년이 된 듯한 기분이오.”
“당신을 그리워하며 밤을 지새우고 있소.”
그의 사랑은 점점 더 뜨거워 졌지만 조세핀은 조금씩 답장을 게을리 하기 시작했다.
조세핀은 파리에 남아 화려한 사교계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녀는 나폴레옹의 부재를 외로움 대신 자유로 채웠고 심지어 다른 남자들과 어울렸다.
이 소식은 급기야 나폴레옹의 귀에까지 들어가자 그는 분노했다.
조세핀의 왕비책봉
“조세핀! 당신은 나의 심장을 찢어놓았소!”
전장에서 승리를 거두고 개선한 그는 곧바로 조세핀을 추궁했다.
조세핀은 눈물로 용서를 구했고 결국 나폴레옹은 그녀를 용서 했다.
시간이 흘러 나폴레옹이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황후가 된 조세핀은 튀일리 궁전에서 나폴레옹과 화려하게 살았는데 단 한가지 문제가 있었다. 조세핀과 나폴레옹 사이에 2세가 생기지 않는 것이었다. 그 당시 합법적 후계자는 반드시 황후가 직접 낳은 아들이어야 정통성을 인정 받았다. 그런 후계자가 절실히 필요한 나폴레옹은 진정으로 사랑하지만 조세핀과 눈물을 머금고 어쩔수 없이 이혼을 결정하게 된다. 결혼한지 13년째인 1809년의 일이다.
말메종 저택
조세핀은 이혼후 나폴레옹에게 하사받은 말메종 저택과 경제적 지원으로 예술과 문화를 사랑하며 우아한 삶을 이어나가고 유럽 각국의 왕족, 귀족들과 교류하며 사교계의 중심인물로 활동 하며 나폴레옹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살았다.
이혼하지 5년째인 1814년 4월 나폴레옹이 실각하여 황제 자리에서 퇴위되어 엘바섬으로 유배 당한다. 이 소식을 듣고 충격에 빠진 조세핀은 나폴레옹을 걱정하며 자신이 아무것도 할수없음을 한탄하다가 건강이 급격히 악화되어 실각 한달후쯤인 5월29일 폐렴으로 사망한다. 그녀 나이 50세....
이혼후에도 서로를 잊지 못하다가 같은해 한사람은 권력을 잃고 한사람은 생을 마감하는 비극적 운명을 맞이한 것이다.
비록 부부로서는 헤어졌지만 나폴레옹은 죽는날까지 조세핀을 잊지 못했다. 그는 1821년 아프리카 외딴섬 세인트 헬레나에서 생을 마감하며 마지막 순간, 그녀의 이름을 애타게 불렀다. “조세~~~핀.........”
그들의 사랑은 비록 완벽하지 않았지만 불꽃처럼 타오르고 운명처럼 얽혀져 있었다. 시대를 초월한 그들의 사랑이야기는 지금도 많은 이들에게 가슴 설레이는 낭만으로 남아있다.
박용설 역사 칼럼니스트 finder5300@hanmail.net
금융회사에 30년간 근무하고 마라톤을 뛰고 있다.
로마사에 흠뻑 빠져 관련책을 섭렵하고 있으며 고대로마의 역사현장에 가서 배우기 위해 로마와 그리스등에서 직접 ‘한달살기’ 체험을 하면서 공부하는 열혈 역사 연구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