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철 삼성 창업주의 손녀로 목회활동을 하는 이혜진 목사.[유튜브 설교 캡쳐]


[비즈체크=정구학 기자] 지난해 12월 4일, 서울삼성병원 장례식장 15호실. 새한그룹의 3남이었던 고(故) 이재원 새한정보기술 대표의 빈소. 조문객을 맞이하는 이는 그의 유일한 여동생, 이혜진 목사(57)였다. 그녀는 가족을 떠나보낸 슬픔을 안고, 조용히 애도하는 자리에서 상주의 역할을 맡고 있었다. 그녀 곁을 남편 조모씨와 자녀들이 지키고 있었다.

삼성 창업주 고 이병철 회장의 차남인 고 이창희 새한그룹 회장의 막내딸인 이혜진 목사는 현재 서울 한남동 유엔빌리지 입구에 위치한 조이어스교회(Joyous Missional Church)에서 목회자로 활동하고 있다. 그녀는 원래 예고와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한 후 평범한 주부의 삶을 살다가, 나사렛교단이 운영하는 신학교를 졸업한 후 목회자의 길을 걷고 있다.

◇삼성가의 불교적 전통 속에서 기독교에 귀의한 이혜진 목사

삼성家는 전통적으로 불교와 깊은 인연을 맺어왔다. 삼성가 장손인 이재현 CJ그룹 회장은 가족의 대소사를 불교 의식에 따라 진행하며, 이건희 전 삼성 회장의 부인 홍라희 여사와 아들 이재용 삼성 회장 역시 불교 및 원불교에 많은 기부를 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혜진 목사는 이러한 가문의 종교적 배경과는 다른 선택을 했다. 그녀는 어릴 적부터 기독교 신앙을 가졌으며, 인생의 여러 갈림길을 거쳐 목회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

미술 공부를 한 뒤 라이프개발가문의 아들과 결혼, 평범하게 주부생활을 하다가 뒤늦게 나사렛교단이 운영하는 신학교에서 목사 안수를 받고 조이어스교회에서 목회활동을 열심히 해오고 있다

그녀는 목사가 된 계기에 대해 묻는 질문에 “원래 개인적인 기독교 신앙을 갖고 있었다. 어릴 때부터 하나님을 믿었지만, 가족의 전통과는 다른 길이었다. 그러다 인생을 살면서 많은 일들을 겪으며 하나님과 더욱 가까워졌고, 결국 목회자의 길을 가게 됐다”고 설명했다.

새한그룹의 해체와 세 오빠의 죽음이 목회자의 길을 선택하는 데 영향을 미쳤냐는 질문에는 “그것과는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며 "하지만 인생을 살다보면 삶에서 겪은 아픔과 시련이 내 신앙을 단단하게 만든 것은 사실이다. 하나님을 믿으며 버틸 수 있었고, 지금도 그 믿음이 나를 지탱해준다”고 말했다.

◇조이어스교회와 신도들의 반응

이혜진 목사가 목회자로 활동하는 조이어스교회(Joyous Missional Church)는 나사렛교단에 속한 신앙 공동체로,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는 예수 공동체"를 표방하며 신도들과 함께 성장해 왔다.

조이어스교회의 한 신도는 “처음에는 삼성 재벌가 출신이라는 점을 전혀 몰랐었다"며 "목사님이 가진 따뜻한 마음과 진심 어린 설교를 들으며 감동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신도는 “목사님께서 인생에서 많은 시련을 겪으셨지만, 그것을 극복하고 신앙으로 승화하는 모습이 우리 신도들에게 큰 감동을 준다”며 그녀의 헌신을 높이 평가했다.

이혜진 목사는 신도들에게 “교회는 단순한 종교적 공간이 아니라, 서로가 위로하고 희망을 찾는 곳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저 역시 인생의 많은 어려움을 겪었기에, 다른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그것이 제가 목회자의 길을 걷는 이유”라고 털어놓고 있다. 그녀는 신도들과의 유대감을 중요하게 여기며, 교회의 사역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것이 목표라고 강조하고 있다.

◇비운의 새한가, 세 아들을 모두 떠나보내다

삼성가의 일원으로 대한민국 경제 발전에 기여했던 새한그룹은 그룹 해체와 함께 안타까운 운명을 맞이했다. 고 이병철 회장의 차남인 고 이창희 전 새한미디어 회장은 3남 1녀를 두었으나, 세 아들이 모두 요절하는 비극을 겪었다.

장남 이재관 전 새한 부회장은 지난 2022년 지병으로 사망했다. 앞서 차남 이재찬 전 새한미디어 사장은 2010년 비극적인 자살을 선택했으며, 3남 이재원 전 새한정보기술 대표도 지난해 12월 심정지로 사망했다.

새한그룹의 해체와 함께, 이들 3형제의 비극적인 사망은 삼성家 및 재계에 큰 충격과 슬픔을 안겼다.

◇새한가의 비극이 남긴 메시지

고 이창희 회장의 부인이자 이혜진 목사의 어머니인 스즈키 요코(한국 이름 이영자)는 일본인으로, 결혼 후 한국에 정착했다. 현재 그녀는 서울 방배동에서 딸 이혜진 목사와 함께 살며, 세상을 떠난 세 아들을 가슴에 묻고 살아가고 있다.

효녀로 알려진 이혜진 목사는 어머니에 대해 “어머니는 정말 강한 분이다. 평생 가족을 위해 헌신하셨고, 지금도 그 사랑을 느낀다. 어머니와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신앙을 더욱 깊이 생각하게 됐다"고 주변 인사들에게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새한그룹은 한때 삼성가의 일원으로서 CJ, 신세계, 한솔과 같은 계열사의 성공을 이어가려 했으나, 경영난과 침몰의 길을 피하지 못했다. 재벌가의 후손으로 태어났지만,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하나둘씩 스러져 간 오빠들. 그리고 그들의 죽음을 지켜봐야 했던 가족들.

3남1녀 형제들중 유일하게 남아, 삼성 창업주의 손녀라는 타이틀을 생각하지 않고 신앙의 길을 걷고 있는 이혜진 목사의 삶에 숙연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