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엔지니어링 사옥 [연합뉴스 자료사진]
[비즈체크=이은주 기자] 현대엔지니어링이 연이은 대형 사고로 인해 전국 공사 현장의 작업을 전면 중단했다. 그러나 이번 조치는 사고가 반복된 후에야 나온 뒷북 대응이라는 점에서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최근 고속도로 교량 붕괴 사고에 이어 아파트 신축 현장에서 또다시 노동자가 사망하는 참사가 벌어지면서, 현대엔지니어링의 안전관리 시스템 전반에 대한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
◇"두 번이나 죽어야 멈추나"… 늑장 대응에 분노하는 현장 노동자들
현대엔지니어링은 11일 전국 80여 곳의 공사장에서 작업을 중단하고 안전 현황 점검 및 안전대책을 재수립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하지만 정작 현장 노동자들은 "사고가 터지고 나서야 대응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며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한 현장 관계자는 "고속도로 교량 붕괴 사고 때도 안전이슈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많았는데, 결국 아파트 공사장에서 또 사망 사고가 발생했다"며 "근본적인 안전 관리 시스템이 부실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 아니냐"고 꼬집었다.
◇서울세종고속도로 참사… 결국 반복된 비극
지난달 25일, 현대엔지니어링이 시공 중인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현장에서 교량 상판이 붕괴되는 대형 참사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10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으며, 당시 구조적인 안전점검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이 원인으로 지목됐다. 현대엔지니어링 주우정 대표가 기자회견을 열어 사과하며 재발 방지 대책을 약속했지만, 불과 보름 만에 또다시 노동자가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하면서 '말뿐인 약속'이라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평택 아파트 공사장 또 사망사고…"위험을 방치한 결과"
지난 10일, 경기도 평택시 화양도시개발구역 내 힐스테이트 아파트 신축 공사장에서 노동자가 추락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1명이 숨지고 1명이 크게 다쳤다. 문제는 이 공사장 역시 현대엔지니어링이 책임지고 시공을 맡았다는 점이다. 사고 발생 직후에도 현장에서는 "작업장의 안전 조치가 미흡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한 건설노조 관계자는 "반복되는 사망 사고는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라며 "현대엔지니어링은 사고가 터질 때마다 현장 점검 운운하며 미봉책을 내놓지만, 실제로 노동자 안전에 대한 투자와 실질적인 대책 마련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작업 중단이 아닌 근본적인 개선이 필요하다"
현대엔지니어링은 "전국 현장의 공사를 중단하고 대책을 수립한 후 작업을 재개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이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대부분의 건설사는 대형 사고가 발생하면 공사 중단 조치를 내린 후 다시 작업을 재개하지만, 실질적인 변화 없이 공사가 계속되면서 같은 사고가 반복되는 게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또한 현대엔지니어링의 안전관리 시스템에 대한 외부 감사를 도입하고, 기업 경영진이 실질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건설노조 관계자는 "사고가 날 때마다 보여주기식 대응만 할 것이 아니라, 원청업체인 현대엔지니어링이 구조적인 안전관리 부실 문제를 인정하고 철저한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몇 명이 더 죽어야 바뀔 것인가"
이번 사건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현대엔지니어링의 안전 불감증과 무책임한 현장 운영이 만들어낸 참사라는 비판이 거세다. 공사 중단이 아니라 실질적인 개선책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이와 같은 사고는 또다시 반복될 것이다.
노동자들은 하루하루 목숨을 걸고 일하는데, 기업은 사고가 날 때마다 면피성 대책만 남발하는 현실이 더 이상 용납되어서는 안 된다. 정부 당국과 노동단체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현대엔지니어링의 전반적인 안전관리 실태를 철저히 조사해야 하며, 책임자 처벌과 근본적인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은주 기자 leigh86@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