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군 남미륵사에서 한 방문객이 연꽃 위에 올라 참선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비즈체크=서동석 수행문화전문가] 우리는 모두 행복을 추구하지만, 실상 행복은 잠시에 불과하다. 그 이유는 우리가 추구하는 행복이 물질적 욕망에 치우쳐 있기 때문이다. 모두가 바라는 물질적 풍요, 권력, 명예 등은 영원하지 않다. 한정된 대상들을 잘 조율하기 힘들기 때문에, 인간사회에서 갈등과 투쟁은 그칠 날이 없다. 더군다나 우리는 그 원인을 두고 서로 상대방 탓을 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가 사는 세상을 고해(苦海)라고 한다. 이런 생각을 하면 마음이 무겁지만, 고통을 피하기만 하면, 영원히 그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불행한 현실을 마주해서, 고통의 바다에서 벗어나는 지혜를 찾아보자.

우리가 고통 속에 사는 원인을 근원적으로 성찰해보면, 어리석음이 불행의 근본원인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진리의 지혜를 증득한 성인(聖人)은 광명(光明)에 비유된다. 모든 본질을 훤히 비추어 보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진리를 볼 수 없는 어리석은 사람들은 무명(無明)이라 한다. 밝은 본심(本心)에서 우러나오는 지혜의 빛이 가려져 있어서, 세상을 온전히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어리석음이 자아내는 수많은 장애가 있지만, 여기서는 중요한 몇 가지만 우선 살펴보겠다.

첫째, 어리석음으로 현상의 앞만 보고, 그 뒷면을 보지 못한다. 현상의 작용에는 그에 상응하는 반작용이 있기 마련이다. 행운이 클수록, 불행도 크게 다가올 수 있다. 둘째, 눈앞의 이익에 사로잡혀, 미래를 보지 못한다. 물질과 정신 양면에서 우리가 갈구하는 욕망과 집착은 언젠가는 사라질 수밖에 없다. 셋째, 인과(因果)를 깊이 성찰하지 못한다. 더욱이 인식할 수 있는 인과보다, 인식할 수 없는 인과는 더욱 크고 무섭다. 넷째, 물질적이고 관념적인 경계 안에 갇혀서, 모든 존재를 아우르는 생명의 순환을 볼 수 없다. 그래서 우리 모두가 하나의 생명공동체를 이루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서로 싸우고 있다.

다섯째, 무엇보다 어리석음으로 인해 무엇이 진리인지 인식할 수 없다. 성인들이 설파한 보편적 진리는 지금까지 어둠을 밝히는 한줄기 등불이 되고 있지만, 우리는 대부분 표현의 장벽에 가로막혀 진리의 참의미를 알지 못하고 있다. 도덕의 기준이 바르게 서있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때로는 알면서도, 대부분은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수많은 죄를 짓고 있다. 무명이 깊을수록 모르고 짓는 죄가 더 많다. 법률 상식으로 보면, 모르고 지은 죄보다 알고 지은 죄가 더 무겁다. 그러나 인과의 법칙으로 보면, 모르고 지은 죄가 더욱 크고 무섭다. 의식하지 못하는 죄는 아무런 죄의식 없이 끊임없이 반복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우리는 전유할 수 없는 진리를 사유(私有)하고 있다. 예를 들어, 자신이 믿는 종교가 아닌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은 구원받을 수 없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러한 인식은 어리석음으로 짓는 가장 무서운 죄다. 에머슨(Ralph Waldo Emerson)은 종교적 편견에 대해 누구보다 따끔한 충고를 했다. “종교적 배타주의자는 다른 사람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천국의 문을 닫으려 애씀으로써, 자기가 들어갈 수 있는 천국의 문을 스스로 닫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천국에 가는 열쇠는 배타적인 믿음이 아니라, 진리를 실천하는 데 있다.

예수가 〈요한복음〉 8장 32절에서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라고 말씀했듯이, 종교의 본질은 일체의 형식과 경계에서 벗어난, 인간의 진정한 해방에 있다. 석가는 인간해방의 방법을 수행법으로 구체화시켰다. 공자, 노자 등의 성인들도 진리의 도(道)에 이르는 삶과 생명의 도리를 세상에 알렸다. 모든 성인들은 표현만 다를 뿐, 공통적으로 대자유의 진리를 설파했다.

본격적인 AI시대가 도래하면, 종교의 융합이 가속화 될 것이다. 이때는 종교의 형식보다는 본질적인 내용이 중요해진다. 오랜 전승과정에서 곡해되고 왜곡된 내용들을 AI를 통해 빠르게 정리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앞서 〈AI에 부여할 보편윤리〉에서 지적했듯이, 모든 종교를 통섭하는 보편윤리를 도출하는 일이다. 그나마 다행히도 출판문화와 디지털기술의 발달로 진리의 말씀들은 거의 대부분 세상에 공개되어 있다. 또한 이미 여러 선각자들은 다양한 연구를 통해 공통의 진리를 상당 부분 도출해놓았다. 다만 구체적인 분류가 미흡할 뿐이다. 중도의 관점을 유지하면, AI를 활용해서 성인의 말씀을 분류하고, 계통을 바르게 세울 수 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실질적인 교육과 훈련을 통해, 성인의 말씀을 삶에 적용하는 일이 중요하다. 진리의 효능은 소유가 아니라, 베풂에 있다. 내가 멍 때리기 쉬운 명상보다, 삶의 수행을 강조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의 의식과 무의식 속에는 혼탁한 인연의 씨앗들이 잠재되어 있기 때문에, 맑은 정신을 유지하기 힘들다. 삶 자체가 혼탁한 상태에서는, 명상은 오히려 또 다른 허상들을 수없이 만들 수 있다. 심행(心行)의 청정은 삶의 인과를 맑고 밝게 하는 데서 이루어진다. 따라서 성인의 말씀을 거울삼아, 우리의 삶을 성찰하는 수행이 가장 안전하다.

현재 명상을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과학화 하려는 노력이 여러 영역에서 시도되고 있다. 명상의 과학적 분석을 통해 뇌신경의 작용원리를 이해하고, 인공신경망을 개발하고 있다. 여기에는 문제점들이 많다. 《융합창의력과 인간교육》이란 책에서 밝혔듯이, 무엇보다 이론과 실험은 관념과 대상의 함수관계에서 벗어날 수 없다. 따라서 초감각 상태의 뇌신경을 아무리 연구해도, 이론과 물질 차원을 벗어난 위없는 진리의 상태에 이를 수 없다. 물질적 효율만 중시하는 세태가 인간성을 파괴했듯이, 특별한 편의나 이익을 위해 개발되고 있는 뇌과학기술은 생명공동체의 질서를 붕괴할 수 있다. AI시대에 명상이 잘못 활용되면, 인류의 종말을 예고하는 사이보그가 현실화 될 수도 있다.

인류사회의 미래를 위해, AI시대 교육은 보편 정신으로 인간의 의식을 향상시키는 데 중점을 두어야겠다. 물론 정보 위주의 물질적, 관념적 교육도 필요하다. 기본적인 자료가 충분히 쌓이고 발효될 때, 성숙한 이성이 싹틀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그치면, AI를 상대할 수 없다. 명상을 과학화 하는 전제는 바른 도덕의식의 회복이다. AI를 활용해서 이성적 토대를 폭넓고 단단하게 쌓은 연후에, 이성을 바탕으로 한층 고양된 영적 성장을 이루어야 한다.

이성을 더욱 성숙시켜 영적 능력을 회복하는 것은 우리 자신에게 달려있다. AI시대는 수행의 시대다. 수행의 기준은 자기 자신이다. 자기를 스승으로 삼을 수 있는 수행단계에 이르렀을 때, 우리는 시류에 휩쓸리지 않고 자기중심을 확고히 잡을 수 있다. 미래시대의 수행에 관해서, 석가는 “스스로 지혜의 불을 밝히고, 진리의 법을 등불로 삼아라(自燈明, 法燈明).”고 말씀했다. AI시대는 기복(祈福)이 아닌 스스로 복을 짓고 받는 자율종교의 사회가 될 것이다. 궁극적 진리는 생명의 지혜다. 자기 본위의 작은 생명이 아니라, 모든 생명을 품어 안는 지혜를 구할 때, 완전한 진리를 얻을 수 있다.

수행문화전문가 = 서동석 박사 eastosuh@daum.net

고려대학교 대학원 영문학과를 졸업(문학박사)했고, 현재 에머슨하우스 교육연구소 소장이다. 서남대학교 영문학과 교수, (재)대상문화재단 이사 겸 동천불교문화재단 상임이사 겸 반야연구소 소장, 고려대학교, 광운대학교, 단국대학교 강사 등을 역임했다. AI시대 융합문명사회를 준비하는 차원에서 인간교육과 수행에 관한 집필, 연구개발과 더불어 수행건강교육문화 보급에 나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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