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체크=서동석 수행문화전문가] 일 년 사계절은 자연의 변화를 가장 분명하게 보여준다. 보통 봄이 계절의 시작이라고 생각되지만, 변화의 기준점은 겨울이다. 동지(冬至)에 양(陽)의 기운이 새롭게 태어나기 때문이다. 겨울은 모든 생명력을 응축하고 있다. 봄이 오면, 겨울의 혹한을 이겨내고 강한 생명력을 키운 연약한 싹이 단단한 땅을 제치고 올라온다. 봄기운을 타고 스프링처럼 튀어 올라온 온갖 생명은 여름에 무성하게 자란다. 그러나 가을로 넘어가면 상황은 반전되기 시작한다. 서릿발 같은 기운이 무성했던 생명작용을 정리하면, 혹독한 엄동설한(嚴冬雪寒)이 찾아온다. 겨울에 생명력은 원점으로 돌아가 다음 생명활동을 준비한다.
자연은 음양의 순환을 통해 생태적 질서를 스스로 찾아가고 있다. 양기(陽氣)의 강도와 지속성은 생명력 발산의 척도가 된다. 반면에 부드러운 음기(陰氣)는 모든 생명을 포용하고, 생명력을 응축하는 원초적 모태다. 한편 양기 속에도 부드러움이 있고, 음기 속에도 강함이 있다. 강함이 생명의 방향성을 준다면, 부드러움은 생명의 순환을 이끈다. 음양의 순환 속에서 강유(剛柔)의 조화는 생명의 질서를 유지하고, 생명력을 강화시키는 원동력이다. 자연의 변화이치에서 인간사회를 조화롭게 유지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
자연의 질서처럼, 강유의 조화는 인간관계의 핵심이다. 의지가 강한 사람일수록 인생의 목표와 방향이 뚜렷하지만, 강한 의지만으로는 인생을 성공적으로 영위할 수 없다. 인간은 사회를 이루며 관계 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상호관계의 부드러운 균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더군다나 상대의 세력이 약하지 않을 때, 강한 태도로 일관하면, 일을 성사시키기 힘들다. 강한 의지가 일을 추진하는 힘이면, 부드러운 마음으로 상대방을 포용하는 자세는 일을 성사시키는 화합력이다.
입장이 다른 상황에서 이해타산으로 상대방을 대하면, 서로 거칠어지기 쉽다. 이때 인간관계를 부드럽게 해주는 것은 인문정신인 예(禮)라고 할 수 있다. 예는 단순히 서양식 예절인 에티켓이 아니라, 상대방을 존중하는 인문정신이 구현된 모든 행위를 말한다. 몸과 마음에서 진심으로 상대를 배려하는 태도는 서로의 관계를 부드럽게 만들기 마련이다. 이와 관련해서 공자는 《논어》 〈위령공편〉에서 우리가 명심해야 할 말씀을 했다. “지혜가 미치고 어진 마음이 그것을 지켜낼 수 있고, 단정한 태도로 일에 임한다 해도, 예로써 행동하지 않으면, 일이 잘 되지 않는다(知及之, 仁能守之, 莊以涖之, 動之不以禮, 未善也).”
부드러운 문화는 사회 전체를 아우를 수 있다. 자연의 변화이치에 관해 공자는 《계사전》에서 “구부러진 원만함으로 만물이 성립하고 하나도 빠뜨리지 않는다(曲成萬物而不遺).”고 말씀했는데, 이와 같은 이치는 융합문명사회로 가는 길목에서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지금 상대방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부드러운 문화가 많이 사라졌다. 이대로 두면, 극한 대립으로 사회가 붕괴될 수도 있다. 근본 원인을 찾아서 해결해야 할 때다.
공자는 모든 사회불안의 원인을 상대방을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의 거친 마음에서 찾았다. 《논어》 〈태백편〉에서 공자는 “사람들이 어진 마음이 없고, 미워하는 병이 깊어지면, 사회는 혼란해진다(人而不仁, 疾之已甚亂也).”고 말씀했다. 원문의 인(仁)은 어진 마음을 넘어 사랑, 충서(忠恕) 등으로 확장해서 해석할 수 있다. ‘불인(不仁)’의 원인은 한마디로 도덕성의 결여다. 사람들의 비도덕적인 행태가 일반화되면, 사회의 갈등이 잦아지게 된다. 갈등이 격화되면, 감정은 보편적 윤리와 질서의식을 흐르게 만든다. 따라서 보편적 도덕과 질서의 기준이 확고하게 정립되지 않으면, 사회의 불행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
지나친 개인주의적 태도는 보편적 정의를 가리는 가장 원초적인 요인이다. 자신의 이익을 앞세우는 자기중심적 성향은 개인 차원을 넘어 사회로 확대되었다.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분쟁과 전쟁은 자기중심의 문화와 관련이 깊다. 나만 잘 살면 된다고 생각하지만, 상대방의 배려 없이는 내 삶의 안정도 보장할 수 없다. 예수는 〈마태복음〉에서 이 사실을 분명하게 일깨웠다. “너희는 남에게서 바라는 대로 남에게 해주어라.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다.”
상대방을 무시하는 마음은 도덕적 해이를 불러오기 마련이다. 도덕적 해이를 방관하면, 개인의 안정뿐만 아니라 사회와 국가의 질서를 무너뜨리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나는 여러 차례 사회문제의 근본 원인으로 인간교육의 부재를 얘기했다. 사실 인간교육은 단순히 학교에서 하는 교과교육으로 이루어지 않는다. 일차적으로 가정이 중요하고, 그 다음으로 가정을 둘러싸고 있는 사회의 환경, 정서, 문화 등이 총체적으로 중요하다. 한 인간의 교육에는 사회 전체가 함께 하고 있는 것이다. 요즘 일선 학교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일부 학생의 무분별한 태도는 가정뿐만 아니라 사회의 부조리한 상황과 맞물려 있다.
그동안 물질적 효율을 중시하는 교육이 사회에 끼친 해악은 너무 크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 비도덕성이 가장 큰 문제다. 물질중심의 문화 속에서 자란 아이들이 사회에 끼칠 해악은 상상하기 힘들다. 자기 자식만 위하는 부모의 이기적인 의식은 오히려 자신의 아이를 망칠 뿐만 아니라, 사회를 붕괴시키는 요인이 된다. 특히 기(氣)가 지나치게 강한 이기적인 아이가 성장하면, 세상을 자기 맘대로 하려고 할 것이다. 그러면 세상은 어떻게 될 것인가? 이 점에 관해 노자는 《도덕경》에서 “천하는 신령스러운 그릇이기에, 억지로 어찌할 수 없다(天下神器. 不可爲也).”고 경책했다.
성인(聖人)의 말씀을 무시하고, 강함을 지나치게 앞세우는 사람의 성향은 폭력성으로 발전할 수 있다. 그 끝은 파멸이다. 그래서 노자는 “사물은 강해지면 곧 쇠퇴해지니, 이는 도가 아니다. 도가 아니면 일찍 끝난다(物壯則老, 是謂不道, 不道早已).”고 말씀했다. 더불어 노자는 “굳고 강한 것은 죽음의 무리다(堅强者死之徒).”라고 결론을 내렸다. 아무리 힘든 상대라도 바른 도리로서 대하면서, 타협점을 찾아야만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인도에서 간디(Mahatma Gandhi)의 무저항 비폭력주의가 대영제국을 상대로 승리한 이유는 자유라는 대의명분의 도도한 흐름을 총칼로도 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묘하게도 강함의 지나침 못지않게, 부드러움의 지나침도 문제를 유발한다. 부드러움은 자칫 안이함을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안이한 정신과 태도 또한 도덕적 타락으로 이어진다. 그러므로 강유를 균형조율하는 도덕의식을 함양하는 정신문화교육이 절실하다. 개인과 사회를 건강하게 만드는 차원에서 관념적인 교육이 아닌, 실질적이고 총제적인 인간교육을 다시 시작할 때가 왔다.
수행문화전문가 = 서동석 박사 eastosuh@daum.net
고려대학교 대학원 영문학과를 졸업(문학박사)했고, 현재 에머슨하우스 교육연구소 소장이다. 서남대학교 영문학과 교수, (재)대상문화재단 이사 겸 동천불교문화재단 상임이사 겸 반야연구소 소장, 고려대학교, 광운대학교, 단국대학교 강사 등을 역임했다. AI시대 융합문명사회를 준비하는 차원에서 인간교육과 수행에 관한 집필, 연구개발과 더불어 수행건강교육문화 보급에 나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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