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 기도

일상의 바른 성찰이 진정한 기도

bizcheck114@naver.com 승인 2024.12.23 10:37 | 최종 수정 2024.12.23 11:04 의견 0

숲속 명상을 통해 자기 성찰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비즈체크=서동석 수행문화전문가] 인류문화는 기도에서 출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함축된 언어로 인간의 고양된 감정을 표현하는 시(詩)는 간절한 기도에서 비롯되었다. 시(詩)라는 한자가 ‘말씀 언(言)’과 ‘절 사(寺)’의 합성인 점에서도 알 수 있다. 여기서 절은 모든 종교 형태를 대표하는 것이다. 무속을 비롯해 신앙의 형태를 띠고 있는 모든 종교행위는 기도를 통해 개인과 사회의 안정과 발전을 기원한다. 종교가 없는 사람도 어려움에 처하면 기도를 한다. 예로부터 우리의 조상들, 특히 집안의 어머니와 할머니에게는 가족의 안녕을 위해 정화수 한 그릇 올려놓고 정성껏 기도를 올리는 전통문화가 있었다. 기도가 우리 생활문화와 밀접하게 관련을 맺고 있는 점에서, 기도에 대한 바른 성찰을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어떤 기도가 바른 기도인가? 아마도 이 문제에 관해서 냉철하고 직접적으로 대답한 대표적인 사람으로 에머슨(Ralph Waldo Emerson)을 들 수 있다. 그는 개신교 목사 집안 출신으로, 그 자신도 목사직을 수행한 적이 있었다. 목사직을 사임한 후에는, 동양의 종교를 섭렵하고 동서양의 종교사상을 하나로 융합한 초절주의를 창시했다. 미국의 통합정신을 대표하는 에머슨에게서 기도의 의미를 알아보면, 개별 종교의 특수성을 넘어 객관성을 띤 기도의 의미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기도에 대한 그릇된 관념이 사회의 모순을 낳고 있다. 에머슨은 이에 관해, 미국의 지도자들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산문 〈자립(Self-Reliance〉에서, “특별한 편의, 즉 전체적 선(善)이 아닌 어떤 것을 갈구하는 기도는 사악하다.”고 말했다. 사실 냉정하게 우리가 하는 기도를 돌아보면, 대부분의 기도는 뭔가 잘 되게 해달라고 비는 일이다. 그런데 우리가 원하는 그것은 남들도 원하는 것이다. 모두가 그것을 원할 텐데, 과연 그 기도가 효과가 있을까? 이런 기도는 잘못된 기도다. 에머슨은 이런 기도에 대해 아주 냉소적으로 평가한다. “사사로운 목적을 성취하는 수단으로서의 기도는 야비하고, 도적질과 같다.” 에머슨이 지적한 기도의 모습이 현재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는 기도의 방식이기도 한 점에서, 그의 일침을 깊이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에머슨은 바른 기도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기도는 가장 높은 견지에서 인생의 사실들을 관조하는 것이다.” 기도는 기복(祈福)이 아니라, 성찰(省察)이다. 성인(聖人)들은 공통적으로 인간이 바른 성찰을 통해 완전한 사람으로 거듭나기를 바랐다. 앞서 여러 칼럼에서 강조했듯이, 인간의 발전은 자기 자신에게 달려있다. 이 점에 관해서, 에머슨은 “스스로 돕는 사람은 신과 사람들에게 언제나 환영받는 법이다.”고 말했다. 자업자득(自業自得)인 것이다. 일체의 미신을 격파하고, 삶의 인과를 성찰하고 자신의 잘못을 고쳐나가는 것이 바른 성찰의 기도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기도라면 최고의 수행방법이기도 하다.

수행의 입장에서 좀 더 구체적으로 바른 기도의 방법에 관해 말해보겠다. 우선 기도하기 전에 심신의 상태를 살피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몸과 마음과 환경이 기도에 적합한 청정한 상태인지 성찰하는 일은 기도에 임하는 자세와 연결된다. 사사로운 감정을 배제하고 공령(空靈)한 상태에서 자신을 돌아볼 때, 자신의 실체가 드러난다. 기도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이 세상이 고정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는 일이다. 무엇인가 고정된 것을 바라는 기도는 세상 변화의 이치에 맞지 않다. 우리가 고정되어 있다고 보고, 소중히 여기는 것들은 언젠가 사라지게 된다. 예를 들어, 사회적으로 높은 위치에 있다고 생각되는 직업은 사회가 변하면 언제든 낮은 위치로 내려앉거나, 심지어는 없어질 수도 있다. 부가가치가 높은 직종일수록 AI가 빨리 대체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우리는 사라지지 않을 것을 기도해야 한다. 그렇다면 무엇이 사라지지 않는 것일까? 그것은 변화의 도리와 도리에 맞게 영위하는 삶 자체는 변하지 않는다. 무언가를 바라는 기도가 명사적(名詞的) 기도라면, 어떤 삶을 살지를 기도하는 것은 동사적(動詞的) 기도다. 명사적 기도는 누군가 대신할 수 있는 물질적 대상에 대한 기도라면, 동사적 기도는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나 자신의 고유한 생명활동에 대한 기도다. 존재에서 삶으로, 대상에서 생명흐름으로, 기도의 내용을 전환할 때, 새로운 세상은 열린다. 기도가 수행의 일환이 되면 가장 바람직하다. 이렇게 되면, 일상의 성실한 삶 자체가 기도가 된다. 인생의 도리에 맞게 성실하게 사는 사람은 개인적인 이익을 위한 특별한 기도가 필요 없다.

한편 우리는 사회적 존재로서, 역할은 인간관계에서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명사적 기도에 익숙한 사람들은 어떤 지위를 투쟁으로 쟁취하려는 경향이 높다. 그런 사람이 높은 지위에 올라서면, 그는 역할의 효율을 중시할 뿐, 역할의 사회적 파장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을 가능성이 높다. 반면에 어떻게 살 것인가의 관점에서 기도를 하는 사람은 자신의 역할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통찰하고, 도리에 맞게 처신하는 데 집중할 것이다.

내가 또는 우리가 죽는다고, 인류사회가 없어지지는 않는다. 우리의 생명활동은 사회문화로 남아 후손들에게 전해지는 법이다. 우리의 육신은 비록 죽어서 없어질지라도, 육신에 깃들어 있던 생명의식은 다음 생명으로 이어진다. 생명의식을 영혼, 카르마(Karma), 업(業) 등 다양한 표현으로 부르고 있는데, 표현을 가지고 논쟁을 할 필요는 없다. 핵심은 우리의 생명활동이 도리에 맞을 때, 후손이 바른 생명정신을 이어받고 번성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떻게 살 것인가에 관해 올바르게 성찰할 때, 우리 사회의 바른 전환은 이루어진다.

어려서부터 바른 기도의 습관을 들이는 것은 사회를 맑고 밝게 바꾸는 동력이 된다. 예를 들어, “우리 아이가 시험에 합격하게 해주세요.”보다는 “우리 아이가 최선을 다해 시험을 보게 해주세요.”라고 하는 것이 바른 기도다. 여기서 핵심은 동사적 생명활동에 중점을 둔 기도라는 점이다. 참고로 나는 “저와 가족과 이 사회를 올바른 길로 인도하소서.”라고 기도한다. 어떤 특정한 대상에 대한 소망이 아니라, 그에 합당한 행위에 대한 성찰로서 기도가 중요하다. 이렇게 기도하면, 우리의 삶을 돌아볼 수밖에 없다. 그 결과로 삶의 도리는 점차 회복된다. 바른 도리가 사회에 확고하게 자리 잡으면, 우리나라의 발전은 당연한 일이 된다.

그동안 인류사회가 끊임없는 전쟁과 다툼으로 고통을 받은 근본원인은 바른 삶의 영위보다는 물질적 대상을 쟁취하는 데 모든 역량을 집중했기 때문이다. AI시대는 수행의 시대다. 무엇보다 AI개발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탐욕과 그로부터 예상되는 참혹한 결과를 예방하기 위해서, 수행문화는 반드시 필요하다. 또한 물질과 정신의 융합의 한계를 초월하는 융합창의력의 발현을 위해서라도, 수행은 불가피하다. 삶을 변화시키는 수행으로서의 기도가 앞으로 인류에게 주어진 마지막 관문이 될 수 있다. 그 관문을 우리가 열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수행문화전문가 = 서동석 박사 eastosuh@daum.net

고려대학교 대학원 영문학과를 졸업(문학박사)했고, 현재 에머슨하우스 교육연구소 소장이다. 서남대학교 영문학과 교수, (재)대상문화재단 이사 겸 동천불교문화재단 상임이사 겸 반야연구소 소장, 고려대학교, 광운대학교, 단국대학교 강사 등을 역임했다. AI시대 융합문명사회를 준비하는 차원에서 인간교육과 수행에 관한 집필, 연구개발과 더불어 수행건강교육문화 보급에 나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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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변하는 시대에는 공공기관, 기업 등에서 대표와 임직원의 바른 인식전환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1)AI시대 어떻게 살 것인가, 2)수행과 건강한 삶, 3)건전한 기업정신문화, 4)초융합사회의 인간교육, 5)자녀리스크 관리 등에 관한 단체 강의, 개별 컨설팅, 그리고 단계적인 균형조율프로그램을 선택적으로 진행합니다. 이메일(eastosuh@daum.net)로 예약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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