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체크=박용설 역사 칼럼니스트] 재무관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는 아마 천재였을 것이다.
최초의 수도와 최초의 도로, 아피아수도와 아피아가도(마차고속도로)를 획기적인 공법으로 건설하였다.(BC312년) 이것은 현대도로의 효시가 된다.
고대에 건설했던 로마가도의 공법은 현대의 도로건설공법과 매우 흡사하다.
땅밑을 1~1.5m가량 파고 큰돌과 작은돌,세멘트,모래를 차례로 다진후 바둑판처럼 두껍고 넓적한돌로 마무리 하였다. 현대에서는 넓적한 돌대신 아스콘으로 포장한것만 다를뿐이다.
산허리는 터널을 뚫고 하천에는 돌다리를 놓아 가능하면 직선으로 만들려고 노력하였다.
가장 곧은길은 직선 70km인 구간도 있어 현대고속도로의 축소판이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평화시에 할 일 없는 군인들의 활용방안은 위정자의 고민거리중 하나인데 로마제국은 현명하게 군인을 이용하여 가도를 건설하였다.
젊고 활기 넘치는 군인들은 건설기술을 빠르게 습득하여 숙련도가 높아졌고 가도 건설에 속도가 붙어 제국 전역으로 확대되었으며 그 가도는 오늘날 유럽도로의 근간이 되었다.
표준,규격화된 로마가도는 어느곳이나 똑같은 규격으로 건설되었으며 석재등 자재는 현지에서 조달 가능한 것으로 사용하였다.
영토가 가장 넓었던 트라야누스시절 로마가도는 80,000km, 지선까지 합하면 150,000km에 달하며 2000년이 지난 현재도 유럽과 아프리카,아시아등에 많이 남아있어 견고성을 증명한다.
2024년 현재 미국고속도로 78,000km, 유럽고속도로 60,000km가량인데 로마가도는 현대의 고속도로와 비교해도 양과 질에서 부족함이 없다.
가도를 다니는 마차는 최대 시속10~20km 까지 빠르게 운행, 2,000km떨어진 이집트까지 20여일 이면 충분히 갈수 있었다.
당시 로마에는 상류층을 상대로한 패키지여행이 있었는데 가까운 그리스부터 먼 이집트등 다양한 상품이 존재하였고 KTX같은 고속마차와 지중해여객선의 연계 조합은 우리가 지금 이용해도 흥미로울 것 같다.
고대로마인들의 시대를 초월한 세련된 사고는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느끼게 한다.
이정표는 1.5km(1로마마일)마다 촘촘히 크고 잘보이는 원통형 흰대리석으로 설치 되었다.
이정표에는 로마로 부터의 거리표시와 가도명, 가는 방향의 정보와 함께 숙박,식당,편의점등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어 군단이나 상인들에게 필요한 자료를 제공하였다.
주요 도시와 군사기지등도 기록되어 군단의 신속한 이동에 기여하였고 또한 여행자들이 길을 잃는 경우는 거의 없었을 만큼 안내문구가 잘 기록되어 있었다.
가도에는 숙박시설과 식당등 편의시설이 있어 장거리여행자나 상업종사자들에게 편안한 휴식공간을 제공하였다.
로마에서 시작하여 제국 전역으로 사통팔달 연결된 가도는 군대가 행진하고 상인들이 오가고 물류가 이동하며 문화가 전파되어 속주 문명이 로마화 되어갔다.
이시대 가도는 항상 최상의 상태로 유지관리 되었다.
전국토로 이어진 가도를 따라 로켓배송처럼 신속 정확한 공공우편의 발달은 군사명령서,정부문서,개인편지등 모두에게 우편 혜택을 제공하였고 오늘날 우편시스템의 모태가 되었다.
고속도로 기능의 가도를 통하여 물류의 신속하고 활발한 유통은 로마전체가 하나의 경제권역으로 묶이며 군사,경제 대국으로 획기적인 발전을 가속 한다.
고대부터 지금까지 로마에는 곳곳에 ‘SPQR’이라는 문구를 볼 수 있다.
도로나 수도등 사회기반시설을 정부가 건설하여 원로원과 시민에게 무료로 제공한다는 대충 뭐 그런 뜻이다.
현대의 공공인프라 개념이 고대로마시대에 있었단 얘기인데 알면 알수록 스마트하고 대단한 나라였다.
박용설 역사 칼럼니스트 finder5300@hanmail.net
금융회사에 30년간 근무하고 마라톤을 뛰고 있다.
로마사에 흠뻑 빠져 관련책을 섭렵하고 있으며 고대로마의 역사현장에 가서 배우기 위해 로마와 그리스등에서 직접 ‘한달살기’ 체험을 하면서 공부하는 열혈 역사 연구가다.
저작권자 ⓒ 비즈체크,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