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체크=이은주 기자] 한화오션이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입찰 관련 군사기밀 유출 의혹으로 HD현대중공업을 경찰에 고발했던 사건을 전격적으로 취소했다. 경찰이 다음 달 중순으로 예정된 수사 결과 발표를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나온 이 결정에 업계는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한화오션은 22일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를 방문해 고발 취소장을 제출하며, "해양 방산 발전을 위한 상호 협력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시점과 배경을 두고 다양한 해석이 나오고 있다.
◇HD현대중공업의 군사기밀 유출 혐의…최종 유죄 판결로 확정된 사건
이번 사건은 HD현대중공업 직원들이 KDDX 사업과 관련한 군사기밀을 부정 취득하고 이를 회사 내부망에서 공유하며 군사기밀보호법을 위반한 데서 비롯됐다. 해당 사건으로 HD현대중공업의 직원들은 작년 11월 최종 유죄 판결을 받았다.
이후 방위사업청은 HD현대중공업 대표나 임원의 직접적인 개입이 확인되지 않았다며, KDDX 사업 입찰 제한 조치를 취하지 않는 것으로 행정지도를 내렸다. 이에 한화오션은 경찰에 추가 수사를 요청하며 HD현대중공업 임원의 책임 여부를 규명하려 했다.
◇경찰 발표 임박…왜 한화는 꼬리 내렸나?
경찰은 다음 달 중순에 KDDX 기밀 유출 사건과 관련한 수사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었다. 이에 따라 한화오션의 고발 취소는 결과 발표 직전의 전략적 결정으로 보인다.
한화오션은 "고발 취소가 해양 방산 산업의 발전과 국가 안보를 위해 필요한 선택"이라고 강조했지만, 업계에서는 고발 취소 배경에 실익을 고려한 정치적 판단이 작용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HD현대중공업 측이 한화오션을 명예훼손으로 맞고소하면서 양측 간 법적 분쟁이 격화되던 상황에서, 한화가 이를 더 이상 끌고 갈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크다.
◇수사 결과 따라 한화 망신 가능성도
이번 고발 취소는 명분상 협력을 강조했지만, 수사 결과 HD현대중공업 임원의 책임이 전혀 확인되지 않을 경우 한화오션의 입지가 흔들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경찰 수사 결과가 한화의 고발 취소 결정을 뒷받침하지 못할 경우, 한화는 단순히 협력을 이유로 고발을 철회했다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
특히 HD현대중공업은 한화오션을 상대로 명예훼손 고소를 진행한 상태다. 만약 HD현대중공업의 법적 책임이 불분명한 것으로 드러난다면, 한화오션은 "사실에 기반하지 않은 고발"이라는 의혹 속에 오히려 신뢰와 명예를 잃을 위험도 있다.
◇고소 취소 배경에 양측 대표 간 교감?
업계에 따르면 이번 고발 취소는 한화그룹 김동관 부회장과 HD현대 정기선 부회장 간의 교감을 바탕으로 이뤄졌다는 후문이 있다. 두 그룹은 최근 글로벌 조선 시장에서 중국의 독주를 견제하고, 해양 방산 수출 확대를 위해 협력해야 한다는 데 뜻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HD현대중공업이 KDDX 사업 입찰에서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한화오션과의 법적 갈등을 원만히 해결하고자 했고, 한화 역시 방산업체 지정 절차에서 정부와의 관계를 고려해 대립을 피한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조선 시장과 방산 협력이라는 명분
한화오션은 고발 취소 이유로 차세대 이지스 구축함의 적기 전력화를 통한 해양 안보 확보와 방산 수출 확대라는 공동 목표를 내세웠다. 그러나 이는 표면적 명분일 가능성이 크다는 평가도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글로벌 시장 상황에서 한국 조선업계의 경쟁력을 강화하려면 대외적인 협력 이미지가 중요하다는 판단이 있었을 것"이라며, 이번 결정은 단순히 국익뿐 아니라 기업 간 갈등의 장기화를 막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라고 분석했다.
◇국익, 협력, 그리고 정치적 판단의 교차점
한화오션의 고발 취소는 경찰 수사 결과 발표 직전에 이뤄진 만큼, 업계에서는 이 결정을 둘러싼 다양한 해석이 나오고 있다. 국익과 해양 방산 발전이라는 대의명분을 내세웠지만, 법적 분쟁의 실익과 글로벌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고려한 정치적 판단이 작용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다만, 수사 결과에 따라 한화의 이번 결정이 전략적 판단이 아닌 섣부른 후퇴로 비춰질 가능성도 있다. 이는 한화오션의 신뢰도와 방산업계 내 입지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어, 그 결과가 주목된다.
관련업계는 "한화측의 무리한 고소로 촉발된 이번 사건은 국가수사본부의 수사력을 낭비시키고, 방위사업청의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발주까지 연기시켰다는 점에서 한화측은 비난을 면치 못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은주 기자 leigh86@hanmail.net
저작권자 ⓒ 비즈체크,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