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건축물 이야기> (1) 영광의 로마, 그 심장 콜로세움

bizcheck114@naver.com 승인 2024.10.17 12:11 | 최종 수정 2024.10.17 12:14 의견 0

“이집트인들아 피라미드를 자랑 하지마라.

아시리아인들아 바빌론을 입에 담지마라.

황제의 새원형경기장 앞에서 그것들의 설자리가 없을 것이다.

모든 명성은 이를 위한 것 모두가 이그림자에 가려지리라!”

로마시인 마르티알리스가 콜로세움 개장식을 보며 쓴 글이다.


[비즈첵크=박용설 역사칼럼니스트] 로마에 가면 꼭 들러야할곳, 로마의 대표선수 콜로세움이다.

AD70년 베스파시아누스황제가 착공하여 10년후인 AD80년 그의 아들 티투스황제가 완공한 종합경기장이다.

최대 50,000명을 수용할수 있으며 대리석과 시멘트를 사용하여 건설하였다.

위급상황시 관객이 5~10분이면 모두 빠져나갈수 있고 더울땐 차양막까지 설치할 수 있어 현대의 경기장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없는 수준이다.

2,000년전에 이런 대작을 완공한 로마건축술에 감탄할뿐이다.

AD67~70년 유대전쟁의 승전전리품 황금촛대등 재물들과 10만명의 유대인 포로들을 활용하여 불과 10년만에 초스피드로 완공하여 세상을 놀라게 하였다.

100일간의 개장이벤트에서 검투사경기와 맹수와의 싸움등으로 5,000마리 이상의 맹수들이 희생되고 검투사들도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였지만 관객들은 잔인한 피의 잔치에 열광 하였다.

로마시민들에게 콜로세움과 전차경기장의 인기는 요즘 BTS를 능가하였다.

이처럼 로마시민의 오락의 중심이며 영원할 것 같은 콜로세움이 어떻게 지금의 뜯겨진 모습으로 파괴되었을까?

AD476년 로마제국멸망후 100만명을 자랑하던 로마시 인구가 3만명으로 급감, 콜로세움은 관리주체 없이 방치되면서 우범지대로 전락, 불법주택과 돼지우리등 축사로 사용되고 지하는 카타콤베처럼 공동묘지로 사용되기도 하면서 위정자들에게 골치아픈 흉물로 변해간다.


급기야 프란지파니가문이 콜로세움을 불하받아 합법적이고 체계적(?)인 훼손이 대물림된다.

흰대리석으로 빛나던 관람석부터 모조리 뜯겨팔리고 원기둥과 300톤의 죔쇠까지 건축재로 파는것도 모자라 팔고남은 대리석에 열을 가해 생석회까지 생산하며 거대한 도시채석장이 되었다. 바티칸 베드로성당 바닥재도 콜로세움에서 뜯겨진 석재를 사용했다고 한다.

훼손으로 신음하던 콜로세움이 북동쪽 외벽만 간당간당 남아 있을때 낭보가 날아든다.18세기 중반 교황 베네틱토14세가 어디서 뭔소리를 들었는지 모르지만 갑자기 뜬금포를 날리신다.

“여기는 많은 기독교도가 순교했으니 성지로 삼자” (희생된 검투사가 기독교도 였나...???)

그날부터 채석이 금지되고 무너지기 일보직전의 부분들은 벽돌등으로 더 이상 훼손되지 않게보강하여 오늘에 이른다.

포로로마노 입구에서 콜로세움을 바라보면 경사면 모양의 이물감있는 벽돌들은 그때 보강한 부분이다.

훼손된 콜로세움 동쪽벽에 부착된 교황 베네딕토14세 명판

이웃에 있던 전차경기장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졌을 운명의 콜로세움이 교황 베네딕토14세 덕분에 간신히 살아남아 오늘 우리가 볼수있는건 정말 다행이다.

다만 좀더빨리 순교지로 지정되었으면 보다 덜 훼손된 콜로세움을 볼수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로마인들은 중세 암흑기보다 경제적으로 부유했으며 사회복지도 잘 발달되어 있었다.

서민들에게는 밀배급을 비롯하여 경기장과 극장,목욕장등 무료이거나 적은비용으로 이용할수 있도록 했고 수돗물값도 무료였으며 가뭄때는 귀족부터 물공급을 중단하여 서민들이 불편함이 없도록 배려하였다.

무역이 매우 발달하여 외국에서 밀려드는 각종 수입품 혜택을 골고루 누렸다. 역참이 발달한 로마가도를 따라 외국여행도 자유롭게 할수 있었으며 이집트 피라미드관광이 최고 인기를 누렸다. 위정자들은 매우 저렴하거나 무료로 빵과 써커스를 제공하므로서 정치에 무관심하게 하는 수단으로 사용하였고 콜로세움에서 가장 많은 볼거리를 제공하였다.


무심하게 지나가는 한 나그네 옆의 옛 도로에는 선명한 마차자국이 남아있어 이천년전 경기에 열광한 관중들의 함성이 들리는듯하다.

경기가 있는 날엔 러시아워가 있었을낀데....

그많은 마차를 어디에 주차하였을까?

박용설 칼럼니스트 finder5300@hanmail.net

금융회사에서 30년간 근무하고 마라톤을 뛰고 있다.

로마사에 흠뻑 빠져 관련책을 섭렵하고 있으며 고대로마의 역사현장에 가서 배우기 위해 로마와 그리스등에서 직접 ‘한달살기’ 체험을 하면서 공부하는 열혈 역사연구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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