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체크=서동석 수행문화전문가] 세상의 변화를 이끄는 3대 요소는 시간과 공간과 사람이다. 동양에서는 예로부터 이 세 가지 요소를 천지인(天地人) 삼재(三才)라고 불렀다. 천(天)은 시간, 지(地)는 공간, 그리고 인(人)은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을 대표한다. 삼재 안에는 우주 만물의 온갖 변화가 다 포함된다. 우리가 지각하는 물질적 변화뿐만 아니라 지각할 수 없는 비물질적인 무궁무진한 변화가 그 속에 담겨있다. 세상의 변화를 예측하는 어떤 도구나 방법도 삼재의 범위 안에서 맴돌 수밖에 없다. 천지인의 영원한 변화 속에서 적당한 시간과 위치에서 제 역할을 찾을 때, 인간은 자신의 생명을 안전하게 유지하고 성공할 수 있다.
천지인의 변화 과정 속에서 최적의 흐름을 타기 위해서는, 앞서 〈실용주의적 중도의 실천〉에서 지적했듯이, 성인(聖人)들처럼 중도의 도리에서 벗어나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중도는 사실 이해하기 어려운 용어이다. 그 의미를 파악하기 어려우면, 실천하기도 힘들다. 따라서 시대의 변화에 맞게 쉬운 우리말로 그 의미를 대체할 필요가 있다. 나는 ‘균형과 조화’를 중도의 적당한 대체용어로 보았다. 그러나 이 표현은 두 개의 단어가 연결되어 있어서, 일반인들이 복합적인 의미를 이해하기에는 어렵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뭔가 단순한 표현이 필요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균형’이란 한 단어로 통합적인 의미를 담으려고 했다. 그래서 심신균형프로그램을 만든 바 있었다.
그러나 ‘균형’도 천지인의 실상을 표현하기에는 적절치 못하다는 판단이 점차 들었다. 왜냐하면 우리가 이상적으로 찾는 균형은 일순간의 조화의 상태일 뿐이기 때문이다. 어떤 현상이든 인연이 화합하면 균형을 이루고, 인연이 흩어지면 불균형의 상태로 전환된다. 한 순간의 균형은 세상의 변화를 다 담을 수 없다. 그래서 찾아낸 말이 ‘균형조율’이다. 모든 생명은 끊임없는 변화의 위태로운 상황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생태적 균형을 지속적으로 조율해야 한다. 인간도 각자의 상황 속에서 끝없이 균형조율을 통해 자신에게 맞는 천지인을 찾을 수 밖에 없다.
세상이 시끄럽고 다툼이 많은 것은 이익이 충돌하는 상호 간에 적절한 균형을 조율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치, 경제 등 모든 영역에서 균형조율이 잘 이루어지면, 사실 싸울 일이 없다. 사람이 적고 자원이 풍부한 고대에는 생태환경이 바뀌거나 다툼이 발생하면, 뜻이 맞는 무리들끼리 새로운 땅으로 이주해서 새로운 질서를 찾을 수 있었다. 미 대륙에서도 개척시대에는 이와 비슷한 상황이 전개됐었다. 그러나 지금은 지구상에 새로운 땅은 사실상 없다.
동일한 대상이나 한정된 자원을 두고 경제적 가치를 논하는 경제학 원리는 이제는 효용가치가 떨어지고 있다. 시간과 공간과 사람이 지구촌 규모로 한데 융합되는 시대에 맞게, 쟁취와 착취보다는 생태적 균형을 조율하는 쪽으로 경제원칙을 수정할 때다. 경제를 비롯한 모든 영역이 앞으로 천지인을 고려하고 균형조율하는 융합체계로 거듭날 때, 인류사회는 지속적으로 안정을 유지하는 근간을 마련할 수 있다.
서양의 물질주의적 방법론과 더불어 동양의 정신주의적 도학(道學)이 함께 융합해야만, 천지인의 변화를 현실에 맞게 온전히 구현할 수 있는 시대가 온다. 다행히 양자물리학, 정신과학 등과 같은 첨단과학의 발전으로 서양과 동양의 양면성을 결합할 수 있는 융합과학이 출현했다. 묘하게도 첨단과학의 난제를 해결하는 마지막 퍼즐은 동양의 정신문화 속에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서양이 이룩한 방법론의 발전에 비해서, 동양의 도학은 오히려 후퇴한 실정이다. 그 원인은 동양의 정신을 망각하고 서양의 학문 방식으로 동양의 도학을 완성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서양과 동양은 이상을 현실에 구현 방식이 다르다. 도학은 사실상 차원이 다른 체득학문이다.
직관적 정신문화로 중심을 잡고 합리적 물질문화를 수단으로 삼을 때, 융합문명사회가 본격적으로 열릴 수 있다. 우리는 서양식 교육 방식에서는 최고 수준에 이르렀지만, 최첨단 분야에서 새로운 융합창의력이 부족하다. 융합창의력의 창의적 동력은 고대 동양의 정신문화를 통해 함양할 수 있다. 동양의 직관적 인식체계에서 변화의 이치를 체득하고, 그 핵심을 서양의 방법론과 융합하는 데 새로운 시대를 여는 열쇠가 있다.
미래의 지도자는 동서양의 정신을 종합적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물론 하나의 사상을 전문적으로 평생을 연구해도, 심오한 뜻을 자세히 알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다행히 출판산업의 발전으로 성인들의 정신은 모두 세상에 드러났다. AI를 잘 활용하면, 중도의 정수만을 뽑아 균형조율의 이치를 빠르게 확립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오랜 세월 전승되는 과정에서 편저자의 의도에 따른 자의적인 편삭(編削)과 곡해(曲解) 등이 걸림돌이다. 이 때문에, 성인들의 사상은 서로 이질적으로 느낄 수밖에 없게 되었다. 따라서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지혜를 모으고 균형조율을 통해 진리를 가리고 있는 장막을 거두어 낸다면, 공통의 핵심 진리는 드러날 것이다.
내가 이러한 생각을 하게 된 근간은 에머슨의 연구 방식에 있다. 사실 에머슨의 초절주의는 동서고금의 이질적인 사상들을 광범위하게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에머슨 사상의 핵심을 찾기 위해서는 수많은 영향관계를 단순 비교하기보다는, 성인의 정신으로 균형조율을 통해 그의 궁극적인 의도를 직접 보는 것이 바람직했다. 나는 이러한 연구 태도를 새로운 시대에 맞는 중도 사상을 이끌어 내는 데 그대로 적용하고 있다.
균형조율의 정신을 실용적인 관점에서 수행문화와 인간교육에 활용할 때가 되었다. 새 시대를 대비하는 차원에서, 나는 2020년에 균형조율프로그램(BMP)에 관한 기본적인 이론과 방법을 전반적으로 설명하는 《나답게 사는 법》을 출간했다. 같은 취지에서 2021년 《주역 인생전략》, 2022년 《경계를 넘어 통합을 보다》, 2023년 《나를 찾을 결심》, 그리고 올해 《융합창의력과 인간교육》이 나왔다. 일련의 책들은 모두 균형인재를 양성할 시기가 왔음을 알리는 내용이자, 그 준비 작업이었다. 이제 기본적인 준비는 되었다. 새로운 융합시대의 지도자 인간교육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뜻있는 분들이 융합인재의 필요성에 대한 사회적 공명을 확산하고, 함께 힘을 합치길 소망한다.
수행문화전문가 = 서동석 박사 eastosuh@daum.net
고려대학교 대학원 영문학과를 졸업(문학박사)했고, 현재 에머슨하우스 교육연구소 소장이다. 서남대학교 영문학과 교수, (재)대상문화재단 이사 겸 동천불교문화재단 상임이사 겸 반야연구소 소장, 고려대학교, 광운대학교, 단국대학교 강사 등을 역임했다. AI시대 융합문명사회를 준비하는 차원에서 인간교육과 수행에 관한 집필과 연구개발을 주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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