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체크=서동석 수행문화전문가] 중도(中道)는 수행뿐만 아니라 세상사의 가장 중심이 되는 이치다. 공자, 노자, 석가, 예수 등 모든 성인(聖人)들은 중도의 도리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중도, 중용, 황금률 등은 표현만 다를 뿐 같은 이치를 담고 있다. 중도는 진리를 달리 부르는 말이면서, 진리에 이르는 도리이기도 하다. 현상의 중도를 지키면, 본질의 중도에 이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고조선 시대 단군의 수행경전이던 천부삼경(天符三經)의 하나인 《참전계경(參佺戒經)》에서도, “바른 도란 중도다. 중도를 전일하게 지키면, 하늘의 도가 밝게 드러난다(正道者, 中道也. 中一其規, 天道乃彰).”고 설파하고 있다.
동서양의 문명이 크게 원환을 그리며 거칠게 만난 미국적 토양에서, 동서의 종교사상을 새롭게 통합한 에머슨(Ralph Waldo Emerson)은 중도의 본질을 ‘중립성(neutrality)’이라고 표현했다. 생태학적으로 번역하면, ‘중성(中性)’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자연의 양극성을 조화시키는 중성은, 큰 맥락에서 보면, 인간사회의 생태적 균형 원리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에머슨 이전에 서양에서 중도는 대부분 ‘가운데 길(the middle way)’ 정도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현실에서 중도는 가운데를 의미하지 않고, 최적의 상태를 의미한다. 다만 현상에서 최적의 함수를 찾는 과정이 너무 복잡해서, 모호하게 느껴질 뿐이다. 양자물리학이 발전하면서, 중도의 현실적 모호함이 오히려 미시세계를 구현하는 데 있어서, 가장 정밀하다는 사실이 입증되고 있다. 불확정성은 세상을 움직이는 실질적인 생명현상이다.
구체적인 해법은 어느 특정한 사안에 대해 대증적 효과를 지니고 있지만, 다른 부분들에는 오히려 역효과를 미칠 수도 있다. 그러나 중도의 이치에서 나온 해법은 개별적인 모순을 아우르고, 전체를 포용하는 융합력을 지니고 있다. 예를 들어, 사랑과 자비가 세상을 조화롭게 유지하는 가장 강력한 친화력이자 생명력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점에서, 에머슨은 “가장 추상적인 진리가 가장 실질적인 진리다.”라고 말했다.
나는 수행을 전문적으로 연구한 이후에 쓴 여러 책에서, 에머슨에 관한 해석을 달리 하고 있다. 그 중에서 에머슨의 주요 산문 5편을 골라 번역하여 2014년에 출간된 《자연》의 〈역자 해설〉에서, 나는 에머슨 사상의 핵심을 ‘실용주의적 중도’라고 설명했다. 에머슨은 비록 도학(道學) 차원에서 중도의 깊은 도리는 몰랐지만, 중도를 실용적인 관점에서 추구했다. 동서문명이 진정으로 융합하는 융합문명시대에 실용주의적 중도는 우리에게 더욱 실질적인 의미를 지니게 된다. 문명대전환을 대비하는 차원에서 동서양의 중도적 도리를 추려서, 새롭게 융합할 시대적 과제가 있다.
AI시대를 맞이해서 모든 중도의 도리를 하나로 융합해야겠다는 생각을 내가 본격적으로 갖게 된 인연은 2017년에 있었다. 그 인연에는 여러 모순된 인연들이 화합했는데, 모든 인연의 결과로 2018년에 나온 책이 《공자 노자 석가 예수를 관통하는 진리》다. 부제가 〈인공지능에 부여할 윤리의식의 해법〉인 책의 내용을 완성할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는 원용강 선생님의 후원이었다. 원선생님으로부터 나는 다석 류영모를 알게 되었다. 다석은 초기 개신교의 요람이라고 할 수 있는 오산학교 교장을 지낸 인물로서, 에머슨처럼 깨달음이라는 측면에서 예수와 석가를 하나의 도리로 본 선각자다.
상이한 인연의 결합으로 이 책이 나오자, 다석의 말씀을 전문적으로 모아 발간한 박용호 선생님은 책을 보고, 원선생님을 통해 감사의 말씀을 내게 전했다. 당시 나는 진리가 모든 종교의 형식을 뛰어넘는다는 사실을 더욱 실감했다. 원래 기획한 책은 천부삼경을 포함한 방대한 것이었지만, 출판사와의 협의를 거쳐 그 내용이 축소되었다. 다만 천부삼경의 주요 내용들이 성인들의 말씀을 보충 설명하는 형식으로 중간 중간 들어가 있다. 이 책에서 나는 중도를 본질과 현상 양면에 모두 적용해서, 성인들의 말씀을 직접 비교하면서 공통의 진리를 제시하고자 노력했다.
중도의 도리는 다른 말로 하면 융합의 도리다. 현상과 본질의 모든 인연사가 바로 지금 여기에서 인연의 총상(總相)으로 만나기 때문에, 모든 것을 하나로 융해관통(融解貫通)하는 도리를 모르면, 실존 상황의 참모습을 알 길이 없다. 올해 나온 《융합창의력과 인간교육》도 융합문명을 대비하는 차원의 책이다. 앞으로는 보다 실용적인 입장에서 융합의 도리를 수행과 인간교육으로 풀어서, 실질적인 융합프로그램과 콘텐츠를 세상에 보급할 계획이다. 수행과 인간교육도 각자의 인연에 맞게 다양성을 확보하고 동시에 전체를 하나로 융합하는 중도의 도리를 회복할 때, 우리사회는 문명전환의 거센 파도에도 무너지지 않는 탄력성과 건전성을 유지할 수 있다.
우리가 사는 현시대는 제자백가 사상이 난무하던 춘추전국시대와 다를 것이 없다. 이론과 사상은 각기 그 나름의 의미가 있으므로, 그 가치를 인정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다양한 이견으로 서로 싸운다면 이론과 사상의 가치는 퇴색되고, 심하면 사회 전체가 파국으로 치달을 수 있다. 따라서 개별 이론과 종교사상을 전체적으로 아우르는 바른 정신이 필요하다. 그 정신은 바로 성인들이 공통적으로 말씀한 중도의 도리다. 무엇보다 우리는 중도의 이치로 바른 정신을 회복해야 한다. 먼저 우리 자신을 바로 봐야겠다. 그 과정에서 우리를 비하하거나, 다른 나라에 의지하는 태도를 버려야 한다. 또한 반대로 우리의 문화에 대해 지나친 우월감을 가져서도 안 된다.
사회가 급격히 변할 때, 우리가 함양해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은 물질과 정신의 상이한 가치 충돌을 아우를 수 있는 중도적 포용력이다. 중도의 도리를 지키는 일은 변화의 흐름을 안전하게 전환하는 핵심이다. 변화의 관점에서, 중도란 생명 관계의 도리를 지키며 변화의 흐름을 따르는 일이다. 특히 문명전환기의 사회 지도자들이 중도의 지혜를 함양하고 펼치는 데 성심(誠心)을 다 할 때, 대중들은 믿고 따르며 새로운 사회로 함께 나아갈 수 있다.
수행문화전문가 = 서동석 박사 eastosuh@daum.net
고려대학교 대학원 영문학과를 졸업(문학박사)했고, 현재 에머슨하우스 교육연구소 소장이다. 서남대학교 영문학과 교수, (재)대상문화재단 이사 겸 동천불교문화재단 상임이사 겸 반야연구소 소장, 고려대학교, 광운대학교, 단국대학교 강사 등을 역임했다. AI시대 융합문명사회를 준비하는 차원에서 인간교육과 수행에 관한 집필과 연구개발을 주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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