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산국립공원 당골계곡 물이 폭포처럼 힘차게 흐르고 있다.[연합뉴스]


[비즈체크=서동석 수행문화전문가] 진리의 세계는 경계가 없다. 그러나 현상의 세계는 수많은 경계로 이루어져 있다. 모든 생명을 아우르는 본질적 생명력은 존재하지만, 각 경계에는 서로 다른 중심가치가 존재한다. 따라서 실질적인 생명의 형태와 활동에서는, 좌우, 상하, 표면과 이면, 작용과 반작용 등의 양극적 모순이 자아내는 갈등과 불안 속에서 끊임없이 균형을 잡아야 하는 상황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본질과 현상의 모순은 생명의 다양성과 역동성을 주지만, 다양한 개체들이 서로 조화를 이루는 데는 인고의 시간과 고통이 따른다. 경계의 모순을 소통하고 균형을 회복하는 정도가 인간사회의 질서를 결정한다.

인간과 자연이 생태적 질서를 찾아가는 방식은 다르다. 자연의 생태적 균형은 ‘자연(自然)’이란 한자어가 의미하듯이, 스스로 그렇게 조화를 이루어나간다. 자연 만물은 한순간도 고정돼 있지 않고 끊임없는 변화의 과정을 보이지만, 일정한 주기의 생태적 질서를 통해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인간의 균형방식은 사뭇 다르다. 동물계의 최상위 포식자인 인간은 동물의 원시적 잔인성과 고도의 이성이 만든 합리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자연적인 흐름을 따라가는 동물과 달리, 인간은 자기중심적인 방식으로 질서를 잡고자 한다. 따라서 그 과정은 갈등과 투쟁의 연속이다.

인간은 가장 고등한 존재라고 스스로 자부하지만, 어찌 보면 가장 나약한 존재인지도 모른다. 고대 동양에서는 인간을 나충(裸蟲)이라고 불렀다. 아마도 보통의 인간은 벌거벗긴 채로 원시 자연 속에 방치되면, 하루도 견디기 힘들 것이다. 다행히 이성이 발달한 인간은 도구를 발명하면서, 삶의 한계를 극복해왔다. 지금은 인간도 통제하기 힘들 정도로 무서운 속도로 진화하고 있는 AI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정보를 처리하는 능력으로 비교하면, 인간은 AI 앞에서는 여전히 나충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AI는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연결하고 처리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여기서 문제는 우리의 의식이다. 우리는 각자 자신이 만든 의식의 경계 속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있으므로, AI가 제공한 정보에는 우리의 마음이 투영되어 있다. 만약 우리가 편파적인 시각으로 정보를 요구하면, AI가 처리한 정보를 통해 얻는 지식은 객관적 진실에서 상당히 왜곡될 수밖에 없다. 인공지능화된 세상이 고도화될수록, 왜곡된 자의식이 투영된 AI의 알고리즘도 더욱 치밀해지게 된다.

모든 정보를 연결하고 융합을 촉진하는 AI는 오히려 사회의 소통에 장애가 될 수 있다. 우리의 마음이 열리지 않는 한, 사회의 경계는 더욱 공고해지고, 사람들 간의 소통은 더욱 힘들어지게 된다. 누군가는 생명의 소통이 없는 일방적인 방식으로 일시적인 이득을 볼 수 있지만, AI시대에서 이러한 행태는 곧바로 사회 전반으로 확산하게 된다. 그 결과로 사회의 질서는 파괴되고, 모두가 공멸할 수 있다.

이 점에서, AI 시스템 안에 보편윤리의식의 알고리즘을 부여해야 하는 일은 인류사회의 지속가능성과 직결되는 문제다. 그러나 서양식의 관념적 보편윤리의식의 도출은 한계를 지니고 있다. 관념이란 것 자체가 물질과 같은 경계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합리적 이성은 때로는 사회의 불균형을 더욱 공고히 하는 쪽으로 작용할 수 있으므로, 진정한 소통을 위해서는 생명의식이 필요하다.

내 생명에는 알게 모르게 다른 생명의 손길이 관여되어 있다. 모든 존재는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므로, 남을 해치는 것은 자신을 해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에머슨은 이 사실을 산문 〈보상〉에서 양극성의 보상이란 관점에서 극명하게 설명했다. “저주는 항상 저주하는 사람의 머리에 돌아온다. 족쇄로 노예의 목을 묶는다면, 그 한쪽 끝은 너의 목에 묶인다.” 사회 혼란의 원인을 다른 사람에게 넘기는 습성이 있지만, 사회의 부조화에는 나의 방관이나 무지가 한몫하고 있다.

이미 많은 기업이 상호주의 원칙에 입각한 윤리경영을 중시하고, 임직원 교육에 활용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수준의 교육과 평가 시스템으로는 AI의 피해를 막는 데 한계가 있다. 관념적 윤리의식을 넘어 일상의 생활 속에서 도덕이 체화되는 과정이 필요하다. 수행문화를 기업문화로 정착시켜야 한다고, 내가 주장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앞으로 수행은 모든 종교사상을 융합하고 심신의학, 정신과학, 양자물리학 등과 같은 첨단과학의 도움을 받아 점점 고도화될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수행이 고도화돼도 기본은 하나다. 그것은 모든 생명이 하나라는 생명의식이다. 모든 존재는 거대한 생명공동체를 이루고 있다.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라.”고 한 예수의 말씀은 이러한 생명의식에서 이해할 수 있다. 원수를 이해하고, 용서하고, 사랑할 정도로 사회가 계몽된다면, 인류사회에서 갈등과 싸움은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양극적 모순이 대립하고 있는 현실에서 조건 없는 사랑은 존재하기 힘들다. 따라서 사회의 소통을 이루기 위해서는 보편적인 사랑과 자비를 이루는 생명의식과 더불어, 엄격한 윤리도덕의 기준이 필요하다. 본질과 현상의 양면에서 생명의식의 실질적 구현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에머슨하우스 교육연구소는 보편적 윤리도덕의 기준을 세우는 데 집중해왔다. 앞으로는 그 기준을 보다 구체적으로 확립하는 일과 더불어, 실질적인 수행과 인간교육을 통해 양극적 모순을 균형조율하는 능력을 갖춘 인재를 양성하는 데 온 힘을 다하고자 한다.

수행문화전문가 = 서동석 박사 eastosuh@daum.net

고려대학교 대학원 영문학과를 졸업(문학박사)했고, 현재 에머슨하우스 교육연구소 소장이다. 서남대학교 영문학과 교수, (재)대상문화재단 이사 겸 동천불교문화재단 상임이사 겸 반야연구소 소장, 고려대학교, 광운대학교, 단국대학교 강사 등을 역임했다. AI시대 융합문명사회를 준비하는 차원에서 인간교육과 수행에 관한 집필, 연구개발과 더불어 수행건강교육문화 보급에 나서고 있다.

<방문 강의 및 컨설팅>

《어둠을 밝히는 지혜》의 발행을 시작으로, 에머슨하우스 교육연구소는 수행문화와 인간교육의 보급에 본격적으로 나섭니다. 보편적 윤리도덕의 함양은 AI시대에 개인, 기업, 나아가 사회의 지속적인 발전을 이루게 하는 원동력이 됩니다. 특강, 컨설팅 등을 통해 시대의 바른 변화에 동참할 뜻이 있는 분들을 모시고자 합니다. 이메일(eastosuh@daum.net)로 신청을 받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