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체크=고영태 객원 대기자] 도요타는 적기 공급(Just In Time) 생산 방식을 도입해 세계 자동차 시장을 석권했다. 재고를 쌓아두지 않고 필요할 때마다 부품을 공급해 효율적으로 생산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코로나 팬데믹이 발생하자 세계 최고의 혁신적 생산 방식이 공급망 붕괴의 주범으로 내몰렸다.
글로벌 생산기지인 중국의 봉쇄, 해상과 육상 운송의 혼란으로 글로벌 공급망은 일시적 마비 상태에 빠졌다. 생필품을 사재기하고, 마스크가 모자라 공중 보건 시스템이 무너지고, 반도체가 없어 차를 생산하지 못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갑자기 모든 것이 부족한 세상이 됐다.
특정 국가에 대한 과도한 의존, 거대 해운사의 독과점 카르텔 같은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글로벌 공급망은 언제든 또다시 무너질 가능성이 크다. 특히 최근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은 유럽연합, 중국, 캐나다, 멕시코 등과 글로벌 ‘관세 전쟁’으로 번질 조짐까지 나타나고 있다. 세이지 인베스터는 <공급망 붕괴의 시대> 저자이자 뉴욕 타임스의 경제 전문 기자 피터 굿맨에게 글로벌 공급망의 취약점과 재편 가능성에 관해 물어봤다.
피터 S. 굿맨, <공급망 붕괴의 시대 저자> & 뉴욕 타임스 기자
1. 경제부 기자들은 일반적으로 금융 시장에 중점을 두고 취재한다. 하지만 당신은 글로벌 공급망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여 왔다. 계기가 무엇인가?
A> 글로벌 공급망에 관한 책을 쓸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일반적으로 보통 사람들은 관심이 없는 주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중 보건의 재앙 속에서 휴지를 구할 수 없고, 코로나 대유행이 발생하자 마스크, 인공호흡기 부품 그리고 기초 의약품 원료의 상당 부분을 중국이라는 한 국가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을 때 갑자기 공급망이 나의 관심을 사로잡았다. 나에게는 개인적인 문제이기도 했다. 첫 번째 코로나 대유행이 덮쳤을 때 나와 아내는 런던에 살고 있었는데 셋째 아이가 태어났다. 우리는 격리된 상태로 생활하면서 신생아와 학교에 다니는 두 명의 아이를 돌보고 있었는데 손소독제는 물론 손소독제를 만들 재료도 구할 수 없었다. 아내가 나를 쳐다보면서 “당신은 이런 문제를 알고 있어야 하는 거잖아,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라고 말했다. 그래서 원인이 무엇인지 밝혀야만 했다.
2. 책을 쓰는 동안 당신은 미국과 유럽 등 여러 국가의 물류 현장을 방문했다. 글로벌 공급망에 또 다른 충격이 온다면 어떤 부분이 가장 취약할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A> 미국에서는 트럭 운송과 철도 운송이 가장 취약하다. 트럭과 철도 운송 분야는 비용 절감과 일자리 질 저하로 황폐화됐고 지속적으로 인력 부족 문제에 시달리고 있다. 이는 철도와 트럭 운송 분야의 일자리가 열악하고 급여도 형편없어 어떤 충격이 발생하면 사람들이 떠날 것이라는 의미이다. 전 세계적으로는 해운산업이 문제다. 규제를 받지 않는 국제 해운 카르텔은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실제 기본 비용보다 훨씬 더 높게 가격을 인상하는 방법을 찾아냈다.
중국에 대한 과도한 생산 의존,
제2의 공급만 붕괴 가능성 높아
3. 코로나 팬데믹 동안 글로벌 공급망이 무너진 주요 원인은 중국에 대한 과도한 생산 의존과 극단적 효율성을 추구하는 적기 공급 방식이라고 지적했다. 이런 취약점을 고려할 때 똑같은 공급망 위기가 또다시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는가?
A> 그렇다고 확신한다. 상장 기업들은 재고 비용을 낮추기 위해 적기 공급 방식을 고집한다. 그래서 위기가 발생하면 또다시 상품 부족 문제에 노출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인건비 상승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여전히 모든 종류의 공산품을 가장 저렴하게 생산하는 공급자로 남아 있다. 이는 효율성, 보조금, 공격적인 기반 시설 투자 그리고 고용을 유지하기 위한 과잉 생산이라는 단순한 사실 때문이다. 중국의 경우 공장 생산 능력과 항구는 과잉 상태이다. 몇몇 기업들이 위험을 줄이기 위해 주문의 일부를 다른 국가로 돌리더라도 중국은 계속해서 글로벌 제조업의 중심 국가가 될 것이다. 하지만 또 다른 위기가 오면 중국에 지속적으로 과도하게 의존하는 함정의 위험이 드러날 것이다.
4. 당신은 철도와 화물 운송 회사들이 노동자들의 희생을 대가로 이익을 추구하고 경영진은 주주들에게 이익을 돌려주는 관행 때문에 공급망이 취약해졌다고 주장했다. 이 문제에 대한 해법이 있다면 무엇인가?
A> 우리는 건전하고 활기찬 경쟁이 독점권력에 무너지지 않도록 합리적인 규제가 필요하다. 노동자들이 자신들 몫에 해당하는 보상을 받는 과정의 일환으로 노동조합을 환영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이 사람들에게 계속 일하고 싶게 만드는 더 큰 동기를 부여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필요할 때 상품을 생산하고 배송받는 신뢰성을 원한다면 그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마땅한 대가를 지급해야 한다.
5. 니어쇼어링(nearshoring)이 글로벌 공급망의 위험을 최소화하는 잠재적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하지만 니어쇼어링은 생산비의 증가를 초래하고 이익이 줄어든 기업들은 과거의 글로벌 분업 시스템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있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A> 니어쇼어링은 유익하고 관련 비용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우리는 멕시코의 노동력이 중국보다 다소 비싸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미국에 제품을 판매하는 회사의 경우 멕시코에서 미국으로 상품을 운송하는 것이 비용도 더 저렴하고 신뢰성도 더 높다. 비슷한 시간대에 공장을 두는 것은 장점이 많고 주문을 더 빠르게 보충할 수 있어 실제로 적기 생산을 할 수 있다. 팬데믹이 한창일 때 의료 장비가 부족하면 얼마나 큰 비용을 치러야 할까? 어떻게 그 비용을 추산할 수 있을까? 문제는 우리가 어떻게 공급망을 구축할 것인가이다. 단기적인 주주의 이익을 위할 것인지 아니면 신발, 소형 전자기기, 그리고 타피오카 비즈(Tapioca beads: 버블티에 들어가는 재료)는 말할 것도 없고 의약품, 반도체 그리고 산업 장비를 공급하는 기업에 의존하는 사람들의 이익을 위한 것인지의 문제이다.
트럼프 관세 정책은 북미 공급망 위협
한국 기업, 해외 생산기지 확충해야
6. 최근 트럼프 행정부가 전 세계 국가를 상대로 관세 부과를 선포하자 중국과 캐나다 등 일부 국가들이 보복 관세를 천명하면서 이른바 ‘관세 전쟁’이 벌어질 조짐이 있다. 트럼프의 관세 정책이 글로벌 공급망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하는가?
A> 캐나다, 멕시코, 유럽, 그리고 콜롬비아 등 여러 국가에 대해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오락가락 하는 위협의 불확실성은 미국에 공장을 지어야만 위험 부담이 없다는 미국 정부의 주장을 재차 강조하는 것이다. 물론 문제는 미국의 임금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미국의 공장은 글로벌 공급망, 특히 캐나다와 멕시코의 공급망에 의존하고 있다. 북미 국가들 사이의 높은 통합 수준을 고려할 때 트럼프 대통령이 이들 국가에 대한 관세를 높이겠다고 위협하는 것은 스스로 미국에 대한 투자의 장점을 약화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많은 기업들이 보수적으로 접근하면서 어디에 투자할 것인지에 관한 결정을 미루고 있다. 확실히 이런 모든 상황이 지역 공급망을 선호하는 추세를 강화시키고 있다.
7. 한국 경제는 대외의존도가 매우 높다. 그리고 대부분의 수출입을 해상 운송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글로벌 공급망 혼란에 특히 취약하다. 글로벌 공급망의 충격에 대비하기 위해 한국 기업과 정부에 어떤 조언을 해줄 수 있나?
A> 한국의 정책 결정자들은 해운산업에 대한 반독점법을 시행하고 부당한 가격 담합을 규제해야 한다. 한국 기업들은 현대자동차가 미국에 공장을 세운 것처럼 자사 제품의 주요 시장이나 인근 국가에 지속적으로 공장을 지어야 한다. 북미 지역에 제품을 공급하는 한국 기업들은 그동안 멕시코를 주목했는데 이는 훌륭한 선택이다. 해운에 과도하게 의존하면서 동시에 관세 정책에서 불리한 입장에 처하게 될 위험이 매우 크다.
로봇 & 자동화는 피할 수 없는 대세
북유럽 모델로 노사 갈등 해소해야
8. 항만 노동자와 운전기사 등 사람에 의존하는 공급망은 언제든 혼란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로봇이나 자동화가 노동력 부족과 비용 증가의 대안으로 등장하고 있다. 공급망 분야에서 로봇과 자동화 산업의 성장 가능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A> 자동화는 피할 수 없는 대세이다. 일자리를 위협받는 노동자들의 충격을 완화하고 미래의 일자리에 필요한 기술을 습득할 수 있다면 좋은 일이다. 기술의 역사는 대체로 사람들이 지루하고 위험한 일에서 창의적인 방식으로 해방되는 이야기다. 로봇 공학은 이런 이야기의 최신 버전일 뿐이다. 하지만 경영진이 자동화를 이용해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불안하게 만들고 임금을 낮출 것이라는 노동자들의 우려는 정당한 것이다. 문제는 사회적인 권력의 균형이다. 질 높은 직업 교육과 생산성 증대에 따른 추가 임금을 받고, 국가의 의료와 교육 체계가 탄탄한 북유럽 국가에서 노동자들은 일반적으로 자동화에 반대하지 않는다. 이런 북유럽의 시스템이 본보기가 되어야 한다.
9. 공급망이 정상화되면서 기업들은 과거의 교훈을 잊고 주주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또다시 적기 공급 방식으로 회귀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제2의 공급망 붕괴 사태를 막기 위해 기업들에게 어떤 조언을 해주고 싶나?
A> 회복 탄력성과 대비책을 고려해야 한다. 기업과 공장 사이의 거래를 좁히고 필요한 장소에 추가 재고를 확보해 두어야 한다.
10. 당신은 해운사, 철도회사, 화물 운수회사 등 거대 물류기업의 독과점이 공급망을 왜곡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런 왜곡을 해소하고 글로벌 공급망의 회복 탄력성을 높이기 위한 방안이 있다면 이야기해달라.
A> 자본주의는 인류가 지금까지 만든 가장 혁신적이고 활기찬 경제 체제이다. 자본주의는 경쟁과 시장의 투명성을 보호하기 위해 강력한 규제에 의존하고 있다. 투자자 계급의 가장 위대한 승리 가운데 하나는 마치 공산주의자들만이 정부의 개입을 요구하는 것처럼 규제에 찬성하는 사람들은 반(反)기업적이라는 터무니 없는 생각을 영구화시킨 것이다. (이 문제에 관해서는 내가 이전에 쓴 다보스 맨(Davos Man: How the Billionaires Devoured the World.)에서 자세히 다뤘다.) 이런 주장은 진실을 위해 계속 폭로해야 할 거짓말이다. 이는 독점주의자들이 다른 모든 사람의 경제적 역동성을 희생하는 대가로 자신들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