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

사회 소통의 가장 기본적인 근간을 이루는 가정의 화목

bizcheck114@naver.com 승인 2024.09.09 10:47 의견 1
서울 노원구 상계5동 주민센터에서 열린 '우리집 가훈 및 입춘첩 나눔' 행사에서 서예가가 주민에게 가훈을 전하고 있다. [연합뉴스]


[비즈체크=서동석 수행문화전문가] 우리나라의 1인 가구 비중은 산업화와 도시화에 비례해서 가파르게 증가했다. 정보화 시대에 들어서서 그 증가세는 더욱 커지고 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23년 전체 인구 중에서 1인 가구의 비율은 35.5%를 기록했다. 1인 가구의 증가는 사회의 급격한 변화를 의미한다. 사회 구조의 변화는 사회 전반의 산업 생태계뿐만 아니라, 의식구조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가장 염려되는 부분은 가족의 붕괴다. 갈수록 심각한 인구문제의 근본원인 중의 하나는 사회 전반에 걸쳐 가족이 해체되고 있는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아이가 커서 부모의 슬하를 떠나는 것은 당연하다. 경제적인 독립을 위해 나 홀로 사는 것은 크게 장려되어야 할 일이다. 문제는 1인 가구 증가의 양상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점이다. 산업화, 도시화 이후에 태어난 사람들은 그 이전의 세대와는 전혀 다른 감성과 시각을 갖고 있다. 부모와 공감대가 적은 아이들은 주로 가상공간의 게임이나 각종 매체의 프로그램에서 대리만족을 하고, 자기만의 세계를 꿈꾸는 성향이 많다. 이런 경향은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예를 들어, MBC 방송국의 〈나 혼자 산다〉가 동시간대 다른 매체의 프로그램에 비해 높은 시청률을 보이고 있는 것은, 젊은이들이 감성과 이성 양면에서 기성세대의 문화와 공감할 수 없는 현상과 무관하지 않다.

가족 간의 소통이 없는 집안의 아이들은 경제적 독립보다는 심리적 탈출을 원한다. 대화가 단절된 가족은 한 집에 살아도 사실상 나 홀로 가족이나 다름이 없다. 사회의 기초를 이루는 가족 사이에서, 소통의 부재는 공동체 의식의 붕괴를 초래할 수 있다. 가족 간의 신뢰와 소통 회복이 사회를 건강하게 만드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다. 물론 아직도 우리 사회 전반에는 끈끈한 가족애와 더불어 공동체 의식이 살아있다. 그러나 지금의 추세로 볼 때,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우리 사회는 오랫동안 유교적 전통 속에 있었다. 또한 산업화 이전에는 농업이 생계의 중심을 이루었기 때문에, 대가족 중심의 가족 문화는 사회의 토대를 이루는 근간이었다. 우리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전체가 근대사회 이전에는 대부분 이런 기조를 이루고 있었다. 이런 문화적 전통 속에서 동양은 예로부터 효(孝)를 중시했다. 국가의 요직에 신하를 임명할 때도, 효자인지 여부가 선발기준의 중요한 잣대였다.

유가(儒家)의 뼈대를 세운 공자도 효를 중시했다. 그러나 공자의 효는 후대 유학자들이 주장하는 효와는 근본이 다르다. 공자는 부모에 대한 자식의 일방적인 효를 강조하는 대신에, 자식을 아끼고 걱정하는 부모의 마음을 보다 앞세웠다. 공자는 집안을 잘 다스리는 사람이 세상에 나가서 정치도 도리에 맞게 할 수 있다고 설파했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는 이런 맥락에서 나온 명제다. 가정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는 사람이 사회를 이끈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 “가정이 화목해야 만사를 이룬다(家和萬事成).”는 말은 우리 시대에 더욱 소중한 가르침이다.

유가의 전통을 확고하게 정립한 맹자도 공자의 정신을 이어받아, 인간이 마땅히 지켜야 할 다섯 가지 윤리도덕인 오륜(五倫) 중에서 부자유친(父子有親)을 첫 번째로 꼽았다. 부모와 자식이 친하고 부모가 자식을 위하는 마음이 진실하고 정성을 다하면, 효를 강조하지 않아도 자식은 자연히 부모에게 효도를 하게 되어 있다. 공자의 정신이 잘못 이어져, 후대에는 부모와 자식 간의 정(情)과 사랑은 뒷전으로 물러나고, 부모에 대한 일방적인 효도를 강조했다. 더욱이 그 효를 통치자에 대한 무조건적인 충성으로 와전시켰다. 효와 충성은 모두 쌍방 간의 진실한 소통이 될 때, 우러나오는 결과다.

나 자신도 아이들이 어릴 적에 10년 정도 지방 대학의 교수로 있으면서, 아이들을 잘 돌보지 못했다. 주말에만 집에 와서 잠만 자고 간 적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가족들에게 사랑도 제대로 주지 못했다. 대학을 그만 두고 서울에 돌아왔을 때, 가족 간에 소통의 벽이 있고 불협화음이 적지 않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내와 세 딸들의 말을 잘 듣고, 친구처럼 다정하게 대해주는 것이 전부였다. 이렇게 10여년이 지나자, 그 동안 쌓였던 앙금이 사라지고 서로를 진심으로 대하는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생겨났다. 이 모든 과정을 참고 인내한 아내와 자식들에게 감사할 뿐이다.

한 국가는 크게 보면 하나의 가족이다. 가족 간의 사랑과 유대관계가 있는 가정은 어떤 역경도 이겨낼 수 있다. 마찬가지로 국민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용서하고 사랑하는 국가는 가혹한 세계정세의 변화에도 동요하지 않고 발전을 도모할 수 있다. 문명의 대전환에 맞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사익을 위한 분열보다는 대승적 차원에서 화합을 강조할 때다. 가족이 모여 사회와 국가를 이룬다는 점에서, 무엇보다 먼저 가족 간의 화합을 이루고, 그 정신을 사회 전반으로 확산해나가야 할 때다. 튼튼한 댐도 조금이라도 틈이 생기면 어느 시점에 순식간에 무너진다. 이와 같이 1인 가구가 증가하는 원인 중에서 일그러진 가족관계를 방치하면, 우리 사회의 붕괴도 시간문제일 뿐이다.

미국의 정신이라고 평가되는 에머슨(Ralph Waldo Emerson)은 미국 지도자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친 산문 〈자립(Self-Reliance)〉에서, “먼 곳에 대한 당신의 사랑은 가까운 곳에서는 악의가 됩니다(Thy love afar is spite at home).”라고 미국 사회에 경종을 울렸다. 에머슨의 정신이 미국을 만든 원동력이라는 점에서, 우리 사회에도 그 말의 의미가 깊다. 세상에서 자신의 중심을 잡고 우뚝 서는 자립(自立)은 주변 사람들과 조화로운 관계를 이룰 때, 생명력을 갖고 세상을 바르게 변화시킨다. 가까운 이웃을 돌보는 것이 사회를 구하는 것이고, 그 시발점은 바로 가족이다.

수행문화전문가 = 서동석 박사 eastosuh@daum.net

고려대학교 대학원 영문학과를 졸업(문학박사)했고, 현재 에머슨하우스 교육연구소 소장이다. 서남대학교 영문학과 교수, (재)대상문화재단 이사 겸 동천불교문화재단 상임이사 겸 반야연구소 소장, 고려대학교, 광운대학교, 단국대학교 강사 등을 역임했다. AI시대 융합문명사회를 준비하는 차원에서 인간교육과 수행에 관한 집필과 연구개발을 주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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