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적 성교육

인간에 대한 바른 이해가 성교육의 전제 조건

bizcheck114@naver.com 승인 2024.07.08 10:19 | 최종 수정 2024.07.08 14:02 의견 0

사회가 붕괴될 때, 가장 먼저 조짐을 보이는 것이 성문화의 타락이다. 남녀 간의 성적 욕구는 인간의 가장 원초적 본능이다. 하지만 그 본능을 절제하는 정신문화가 사라지면, 사람들은 수치심을 상실하고 폭력적으로 변하게 된다. 폭력과 섹스는 서로 악순환 관계에 있다. 거대한 로마제국이 몰락한 원인도 폭력과 성적 타락에서 찾을 수 있다. 콜로세움에서 피비린내 나는 참혹한 경기를 즐기던 로마인들의 폭력성이 그대로 여성의 성적 학대로 이어졌다. 성도덕의 타락은 사회 전반의 도덕의식 결여와 바로 연결되면서, 결국 인간성을 파괴하고 거대한 로마제국을 붕괴시켰다.

한 사회의 성문화는 그 사회의 의식수준을 보여주는 기준이 된다. 인간은 존엄성을 지닌 존재다. 남녀를 불문하고 상대방을 성적 대상으로 보는 순간, 인간의 존엄성은 사라진다. 법정의무교육으로 성희롱 예방교육이 있지만, 성범죄를 예방하기 위해 단순히 법률적 차원에서 성윤리를 얘기하는 것은 지극히 서양 중심의 물질적 사고방식이다. 서구식 성교육은 남녀의 해부학적 구조와 성적 심리의 차이에 집중되어 있다. 성(性)의 차이, 역할, 기능 등에 중점을 둔 육체적 성교육은 남녀의 인간적 소통을 막는 요인이 될 수 있다. 남녀의 성 구분을 넘어 본질적 인간으로서 상대방을 이해할 때, 성희롱이나 성폭력을 근원적으로 예방할 수 있다.

모든 존재의 의미를 근원적으로 성찰할 때, 인간에 대한 바른 이해가 가능하다. 인간은 거대한 생명 공동체의 극히 작은 일부분이면서, 동시에 우주의 생명 정신을 공유한 위대한 존재이기도 하다. 부분이자 전체인 인간이 가지는 도덕적 의무와 존엄성을 성인(聖人)들은 공통적으로 말씀했다. 인간은 몸과 마음으로 이루어져 있다. 몸은 자연의 일부분으로서 물질적 제약을 받고 있다. 마음은 상대적 세계에서 윤리적 관계로서 작용하는 이성과 감성의 심리, 의식적 관념을 초월한 영혼, 그리고 개별 영혼의 고향인 우주의 본심(本心)으로 나눌 수 있다. 따라서 인간은 심신 양면의 한계성과 영적 존재로서 영원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물질과 정신 양면에서 인간의 총체성을 정확하게 꿰뚫고 있는, 인류역사상 가장 오래된 경전 중의 하나가 《역경(易經)》이다. 역경 중에서 현재 유일하게 남아 있는 《주역(周易)》은 모든 존재를 음양(陰陽)으로 설명하고 있다. 음양은 물질과 정신의 결합인 인간을 가장 잘 표현하는 기호라고 할 수 있다. 음양의 조합으로 구성된 64개의 괘가 실질적인 인류문명의 흐름이자, 인간의 특성을 대표한다. 양(陽)은 생명의 에너지를 발산하는 힘이고, 음(陰)은 생명력을 응축하는 힘이다. 새로운 질서를 부여하는 힘이 양이고, 그 질서를 수용하는 구체적 작용이 음이다.

모든 존재는 음과 양을 동시에 갖고 있다. 한의학적으로 볼 때, 남자는 대체로 남성성과 여성성의 비율이 55:45로, 남성성이 조금 더 높다. 여자는 그 반대다. 개인의 특성에 따라 비율의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어떤 경우이든 음양이 보상관계를 이루며 모든 존재를 완성하고 있다. 주역에서 강조하는 것은 ‘때(時)’와 ‘위치(地)’다. 주역은 시공간의 변화에 따른 인간 처세의 이해를 돕기 위해 남성과 여성에 해당하는 표현을 쓰고 있다. 여기서 남녀의 성 구분은 중요하지 않다. 공자가 해설한 주역은 음양을 통합한 생명의 변화 흐름을 인류문명사의 관점에서 논하고 있다. 다만 음양의 보상관계가 시대의 변화에 대응하는 인간의 의지에 따라 다르게 이루어질 뿐이다. 성별을 떠나 완전한 인간으로 거듭나는 수행이 융합문명시대에 맞는 진정한 인문학적 성교육이다.

주역에서 양(陽)을 대표하는 괘는 중천건(重天乾, )이다. 여섯 개의 효가 모두 양효(陽爻)인 중천건은 하늘의 변화를 상징하며, 강건하고 굳센 양기(陽氣)를 대표한다. 양기가 제 힘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6단계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온양(溫養), 학습, 보완, 출사, 웅비, 그리고 용퇴의 단계를 순환한다. 여섯 단계가 하나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위치와 차원에서 반복되면서 의식의 상승을 견인한다. 변화의 단계에 맞게 생명력을 발산하고, 마지막에는 물러나라고 가르친다.

음(陰)을 대표하는 괘는 중지곤(重地坤, )이다. 음효(陰爻)로만 구성된 중지곤은 땅의 생명 관계를 상징하며, 하늘의 이치에 순응하는 온순한 음기(陰氣)를 대표한다. 양기의 발현 과정에 대응해서, 음기는 생명의 응결, 절제와 바름, 진선미(眞善美)의 함양, 신중, 중용의 덕성 발휘, 그리고 새로운 전환의 진통이라는 6단계 과정을 거치게 된다. 중지곤도 마지막 단계에서는 새로운 차원상승을 위한 결단이 필요하다. 역(易)의 묘미는 음양의 풀무질을 통해 인간을 완성하는 데 있다.

보통 역술가들은 음(陰)을 여성으로, 양(陽)을 남성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소강절과 주자의 영향으로 주역을 역술적으로 보는 관점에서 비롯된 것이다. 주역은 역술서가 아니라, 몸과 마음과 삶의 수행서(修行書)다. 음양 변화의 고통을 극복하고 영혼을 고양하는 일이 모든 존재의 궁극적인 목적이다. 같은 맥락에서, 성교육은 인간교육이 될 때만이 인간성을 온전히 보호할 수 있다. 인격성장에 도움이 되는 짝을 찾는 지혜를 길러주는 데 인문학적 성교육의 참된 의미가 있다.

수행문화전문가 = 서동석 박사 eastosuh@daum.net

고려대학교 대학원 영문학과를 졸업(문학박사)했고, 현재 에머슨하우스 교육연구소 소장이다. 서남대학교 영문학과 교수, (재)대상문화재단 이사 겸 동천불교문화재단 상임이사 겸 반야연구소 소장, 고려대학교, 광운대학교, 단국대학교 강사 등을 역임했다. AI시대 융합문명사회를 준비하는 차원에서 인간교육과 수행에 관한 집필과 연구개발을 주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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