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에 대처하는 도리

문명대전환의 위기를 뛰어넘는 발판은 지도자의 인간교육

bizcheck114@naver.com 승인 2024.09.23 10:03 의견 0
서울 종로구 성균관대학교에서 열린 신입생 환영회 신방례에서 선배와 후배들이 인사를 하고 있다. 신방례는 조선 시대 과거에 합격한 유생들을 환영하기 위해 열리던 전통 의식이다.[연합뉴스]

[비즈체크=서동석 수행문화전문가] 변화에는 현상과 근원의 두 가지 차원의 변화가 있다. 근원적 변화의 실상을 알고자 하면 불교의 유식학(唯識學)을 탐구하는 방향이 좋고, 현상적 변화의 원리를 이해하려면 역(易)을 공부하는 쪽이 현명하다. 우리는 현상을 통해 본질의 세계로 갈 수밖에 없으므로, 현상에서 이루어지는 변화를 먼저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공자가 도를 깨친 근간이 되는 《역경(易徑)》의 한 부류인 《주역(周易)》은 인류문명 차원에서 현상적 변화의 실상을 설파하고 있다. 공자는 역의 이치를 사람들에게 체계적으로 이해시키기 위해 십익(十翼)이라는 해설서를 남겼다. 그 중에서 《계사전(繫辭傳)》은 변화의 이치에 관한 공자의 심오한 통찰력을 엿볼 수 있다.

공자는 역의 의미를 “낳고 낳음을 역이라 한다(生生之謂易).”라고 정의했다. 끊임없는 변화가 역의 속성이다. 우리는 시공간의 변화를 선형적(線形的)으로 이해한다. 그래서 우리는 대부분 뭔가 한 가지 속성이 끝없이 이어질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자기가 소중히 여기고 있는 것이 영원히 유지되기를 소망하지만, 불행히도 영원히 소유할 수 있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영원불멸을 원하는 쪽과는 반대로, 한 세상을 사는 것으로 세상은 종말을 고한다고 생각하는 부류도 있다. 특히 세기말이나 문명 전환의 시기에 종말론자들은 득세를 한다. 그러나 양쪽 모두 변화의 실상과는 거리가 지극히 멀다.

공자는 변화의 이치를 비선형적(非線形的)으로, 양면적으로 설파했다. “음양이 번갈아 도는 것을 도라 한다(一陰一陽之謂道).” 음양의 상반된 기운이 만물에 깃들어있다. 양은 발산하는 성향이 있다면, 음은 수렴하는 속성이 있다. 따라서 변화는 일직선으로 나아가지 않고, 진퇴(進退)를 거듭하며 원환을 그리고 있다. 《주역》의 순서만 봐도 진퇴와 원환의 흐름을 알 수 있다. 양을 대표하는 중천건(重天乾)에 연이어 음을 대표하는 중지곤(重地坤)으로 현상의 기초를 이루고, 수많은 변화를 거치면서 수화기제(水火旣濟)로 완성된다. 그러나 바로 다음 마지막 64번째 괘에서는 돌연 반전이 일어나, 화수미제(火水未濟)의 혼돈 속으로 전환되면서 세상은 다시 새롭게 시작한다.

‘낳고 낳음’이 우주 만물에 연속할 뿐이다. 동일하게 보이는 것도 계속 변화의 과정 속에 있다. 다만 변화의 양상이 직선적인 진퇴가 아니라는 점이다. 역(易)의 영향을 받은 노자도 《도덕경(道德經)》에서 변화의 흐름에 관해, “구부러짐으로써 온전하다(曲則全).”고 설명했다. 노자가 말한 ‘곡(曲)’은 바로 《역경》에서 유래한 말이다. 직선은 우리의 관념 속에서만 존재할 뿐이다. 현실에서는 진공상태의 절대평면이 없기 때문이다. 만물은 곡선의 원환을 그리며, 성주괴공(成住壞空)을 반복하고 있다. 구부러짐과 멈춤의 미학이 역의 이치 속에 숨어 있다.

영원한 실체는 없다. 석가가 설파한 무아(無我)와 무상(無常)도 같은 이치다. 그러나 슬퍼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현상의 변화를 가능하게 하는 섭리, 즉 진리의 이치는 변화하지 않기 때문이다. 문명의 흐름이 아무리 급변해도, 변화의 근본이 되는 생명의 기본 도리는 변하지 않는다. 생명의 도리로 자기중심을 잡고 삶을 영위하면, 변화의 흐름에 구애받지 않는다. 다른 말로 하자면, 생명변화의 흐름과 하나가 되어, 고요하고 흔들림이 없게 된다. 마치 동일한 속력과 방향으로 함께 가면 속도를 느끼지 못하는 것과 같다.

모든 생명은 자신을 중심으로 다른 생명들과 서로 조화와 균형을 이룰 때, 안정적인 생태계를 유지할 수 있다. 인간사회도 마찬가지다. 인류사회의 공생관계가 깨지면, 물질과학의 발전은 지구촌의 생태계뿐만 아니라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된다. 음양이 생명활동의 기본 원칙이기 때문에, 발산하고 수렴하는 생명의 양면적 작용 사이에서 조화로운 균형을 유지하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나는 앞선 칼럼 〈AI시대 수행이 필요한 이유〉에서, 수행을 통한 ‘보편정신의 함양’이 물질문명과 정신문명이 융합하는 시대에 가장 중요한 요소라는 사실을 강조한 바 있다. 성인들의 모습에서 문명대전환에 대비하는 바른 정신을 배울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성인과 같은 정신을 추구할 수는 없다. 어느 시대나 세상의 변화를 선도하는 사람은 소수의 지도자들이었다. AI시대에도 마찬가지다. 바른 정신을 지향하는 소수의 선각자들이 올바른 길을 제시하면, 나머지 사람들은 안심하고 자신의 영역에서 제 역할을 다 할 수 있다.

공자는 사회의 흐름을 파악하고 선도하는 선각자이자 지도자를 군자(君子)라 했다. 공자는 십익의 하나인 《문언전(文言傳)》에서 “군자가 덕을 쌓아가고 학업을 닦는 것은 시대에 맞게 하고자 함이다(君子進德修業, 慾及時也).”라고 말씀했다. 군자가 정신적 수행을 통해 도리에 맞는 삶을 영위하고, 더불어 시대에 맞는 실용적 기술이나 학문을 닦는 본분은 시대의 변화를 조화롭게 이끌기 위함이다. 덕을 쌓는 것은 정신의 중심을 잃지 않기 위해서고, 학업을 닦는 것은 물질의 변화를 주도하고자 함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똑똑하기로 정평이 나있다. 한강의 기적은 우리 안에 내재한 뛰어난 재능과 불굴의 의지로 일구어낸 결과다. 그러나 천부적인 능력이 지나치게 물질적인 쪽으로 기울어져서, 인문정신은 거의 아사직전이라고 할 정도다. 새로운 융합문명사회에서 우리사회가 건강하게 지속가능하기 위해서는, 물질과 정신의 균형을 회복해야 한다. 모든 영역의 지도자들이 각자의 영역에서 공자가 제시한 군자의 중도적 본분을 다한다면, 우리나라는 문명대전환의 위기를 역으로 웅비의 기회로 돌릴 수 있다. 이 점에서, 수행적 측면에서 지도자의 인간교육을 새롭게 준비할 때다.

수행문화전문가 = 서동석 박사 eastosuh@daum.net

고려대학교 대학원 영문학과를 졸업(문학박사)했고, 현재 에머슨하우스 교육연구소 소장이다. 서남대학교 영문학과 교수, (재)대상문화재단 이사 겸 동천불교문화재단 상임이사 겸 반야연구소 소장, 고려대학교, 광운대학교, 단국대학교 강사 등을 역임했다. AI시대 융합문명사회를 준비하는 차원에서 인간교육과 수행에 관한 집필과 연구개발을 주로 하고 있다.

저작권자 ⓒ 비즈체크,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