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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한화그룹 제공]

[비즈체크=홍선기 기자]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이 아들 셋에게 ㈜한화 지분 11.32%를 증여하며 사실상 경영권 승계를 마무리했다. 지분 증여는 오랜 시간 예고됐던 ‘순리’로 볼 수도 있지만, 이번 결정이 내려진 시점은 여러모로 묘하다.


◇왜 하필 지금인가.

3월 31일, ㈜한화는 김 회장이 보유한 지분 22.65%의 절반을 장남 김동관 부회장(4.86%), 차남 김동원 사장(3.23%), 삼남 김동선 부사장(3.23%)에게 증여했다고 공시했다. 이미 한화에너지(㈜한화 지분 22.16%)의 100% 지분을 가진 이들은 이번 증여로 ㈜한화에 대한 실질 지분율을 42.67%까지 끌어올렸고, 그룹의 지배구조 정점에 서게 됐다.

한화 측은 “유상증자·지분 인수 등 최근의 승계 관련 오해를 불식시키고, 그룹이 본업에 집중할 수 있도록 결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번 증여는 여러 정황상, 단순한 해명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타이밍의 절묘함이 있다.

◇유상증자 논란 속 ‘선 긋기’…지배력 확보의 적기였나

최근 한화그룹의 유상증자와 관련된 시장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대규모 유상증자를 단행하며, 조선·우주·방산 통합 패키지를 내세운 글로벌 전략을 추진 중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유상증자와 한화오션 지분 인수가 사실상 김동관 부회장 체제를 굳히기 위한 포석이라는 의혹이 제기됐다.

여기에 더해 ㈜한화-한화에너지 합병설이 제기되며 “지주회사 가치를 의도적으로 낮춘 후, 승계 작업을 추진하려는 것 아니냐”는 시장의 불신도 커졌다.

이런 배경 속에서 이뤄진 지분 증여는, 오히려 ‘해명’보다 ‘증명’으로 읽히기 쉽다. 실제로 한화 측은 “합병 시 주가 조작 등의 의혹은 사실이 아니며, 승계와 무관하다”고 강조하며 선을 그었다.

그러나 기업의 대규모 전략이 총수 일가의 이해와 맞물리는 순간, 시장은 그 진정성을 의심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이번 증여는 그런 타이밍에 정확히 겹쳐 있다.

◇주가 낮을 때 증여?…“세금 최소화 노렸나” 의혹도

지분 증여는 3월 31일자로 단행됐지만, 증여세는 한 달 뒤인 4월 30일 기준 전·후 두 달 평균 주가로 과세가 결정된다. 한화 측은 “의도적 저가 증여는 아니다”라고 강조했지만, 주가 하락 시점을 전후해 증여가 이뤄진 점은 의심의 여지를 남긴다.

실제로 이번 증여로 세 아들이 납부해야 할 증여세는 약 2,218억 원으로 추산된다. 결코 적지 않은 액수지만, 장기적으로 지배력 강화를 통한 경영 안정성과 배당 수익을 고려하면 충분히 감내할 만한 비용이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타이밍이 절묘하다’는 지적은 바로 여기서 나온다. 주가가 낮고, 그룹 내 불확실성이 커지는 시점에 승계를 마무리하면, 세 부담은 줄이고, 경영권은 공고히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민단체 “노골적인 재벌 세습…국민은 구경꾼인가”

이번 승계 발표에 대해 시민단체들은 즉각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수천억 원대 지배력을 가족에게 넘기면서도 사회적 검증이나 공개 논의 없이 처리한 전형적인 재벌 세습”이라며 “이 나라의 대기업은 총수 일가만의 회사인가, 국민 누구도 이 구조에 목소리를 낼 수 없는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특히 김동선 부사장의 경영승계는 또 다른 논란거리다. 과거 폭행, 음주운전 등 각종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인물이 그룹 핵심 지배구조에 이름을 올렸다는 점에서, ‘혈연 경영’의 한계가 여실히 드러났다는 지적이다.

총수 일가가 지분을 물려주는 방식으로 기업을 통제하는 구조는 반복돼왔다. 하지만 방산, 에너지, 조선 등 국민경제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한화가 동일한 수순을 밟는 현실에 대한 사회적 피로감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기업 승계는 해도 된다…그러나 그 방식이 문제다

한화는 이번 증여로 지배구조 불확실성을 제거하고, 책임경영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김 회장도 회장직은 유지하되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자문 역할에 집중할 예정이다. 그러나 기업 승계는 단순히 지분을 넘기는 행위로 끝나지 않는다.

공정한 절차, 사회적 합의, 투명한 검증이 뒤따라야 한다. 가족 간 주식 거래 한 번으로 국가기간산업을 좌우하는 대기업의 지배구조가 정리된다면, 그 피해는 국민과 노동자, 협력업체 모두에게 돌아간다.

이번 승계는 성공적인 ‘절차’일 수는 있어도, 바람직한 ‘방식’은 아니다.
김 회장의 결단은 ‘왜 지금인가’라는 질문에 분명한 해명을 남기지 못한 채, 또 하나의 재벌세습 사례로 기록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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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연 회장(가운데)와 세 아들 [연합뉴스 자료사진]

홍선기 기자 imagine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