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남녀(飮食男女)

먹고사는 문제와 남녀 간의 욕구가 인류역사 움직이는 원초적 동력
건강한 사랑은 인류애의 기초... 남녀간 일시적인 사랑이 영원한 인류애로 승화돼야

bizcheck114@naver.com 승인 2024.07.01 09:36 | 최종 수정 2024.07.01 09:53 의견 0

인류사회의 본질적인 특징을 정의하자면, 공자가 《예기(禮記)》에서 말씀한 ‘음식남녀(飮食男女)’라는 한마디로 표현할 수 있다. 음식남녀는 인간의 욕망을 대표한다. 석가도 사바세계를 움직이는 힘이 욕망임을 통찰하고, 인간이 사는 세상을 욕계(欲界)라고 말씀했다. 먹고사는 문제와 남녀 간에서 비롯되는 온갖 욕구가 인류역사를 움직이는 원초적 동력이다. 역사를 철학사조의 흐름이나 과학기술의 발달 측면에서 다양하게 분류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밑바닥을 보면, 두 줄기 근본 욕망의 얽히고설킴이 수많은 문명의 부침을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예나 지금이나 동일하다. 변화의 현상만 다를 뿐, 욕망의 흐름 자체는 그대로다.

원초적 욕망에서 비롯된 희로애락(喜怒哀樂)이 삶을 형성하는 실질적인 힘이라는 점에서, 욕망을 어떻게 관리하느냐가 행복과 번영을 좌우한다고 말할 수 있다. 잘 먹고 살고자 하는 욕구는 물질적 욕구다. 우리 몸은 자연의 일부로서 물질이기 때문에, 몸이 요구하는 성분을 충족시키는 것은 생존을 위한 본능적 욕구다. 생존본능에서 인간은 동물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

하지만 동물과 인간은 생태적인 측면에서 전혀 다르다. 동물은 필요한 것만 먹고 쌓아두지 않지만, 인간은 필요 이상으로 취하고 쌓아놓으려 한다. 그렇기 때문에 욕구가 지나치면, 다툼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음식이 대표하는 물질은 생존의 조건이지만, 지금은 주객이 전도되어 삶의 목적이 되었다.

인류사회에 싸움이 끊이지 않는 근본 이유는 인간이 모든 존재의 생태적 관계를 근원적으로 통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음식을 보다 근원적인 측면에서 보면, 생명을 대표한다고 볼 수 있다. 고대 인도의 경전인 《우파니샤드》는 모든 생명이 음식에서 나와서 음식으로 돌아간다고 설파했다. 음식은 전체 생명공동체의 그물망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매개체다. 또한 음식은 생명을 움직이는 자양분이라는 점에서 생명력 그 자체다. 음식을 보는 관점이 생태적으로 변하지 않으면, 인간사회의 분쟁은 끝없이 이어질 수 있다.

음식이 생명을 움직이고 유지하는 원동력은 순환에 있다. 순환하지 않고 정체돼 있는 것은 내부에서 썩기 시작해서 서서히 붕괴된다. 수많은 자연재해, 사회적 갈등, 전쟁 등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생명의 순환이 막힌 상태에서 발생하는 반작용이다. 자연의 일부에 불과한 인간이 대자연의 법칙을 거스른 대가는 상상하기 힘들다. 생태계를 복원하는 일은 내 몸의 생태적 균형을 회복하는 일에서 시작된다. 몸이 생태적 균형을 회복하면, 몸은 필요한 것만 요구하게 된다. 몸이 필요 이상으로 지나치게 뭔가를 원한다면, 역으로 몸의 균형이 무너졌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한편 몸과 마음은 하나다. 몸의 욕구는 마음의 욕망과 그대로 연결된다. 몸이 마음에 영향을 주듯이, 심리(心理)가 생리(生理)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심신의학(心身醫學)에서 몸과 마음의 관계를 통해 질병을 치료하고 있는 근거다. 심신의 균형을 회복하는 관건은 몸과 마음의 욕구를 잘 살피고 조율하는 데 있다. 물론 절제와 인내가 필요한 일이다. 한편 사람마다 체질과 성향이 다르기 때문에, 각자의 기본적 욕구도 다르다. 외부 상황과 조건에 따라 변하는 심신의 상태를 파악함으로써, 자신의 욕망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전환할 수 있다. 이 점에서, 자신의 의사는 자신이다. 만약 자신을 잘 모른다면, 자신에 대한 존중을 스스로 하지 않은 것이다.

심신의 생태적 균형이 잘 잡힌 남녀 간의 사랑은 건강한 인간사회를 유지하는 토대를 이룬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균형을 상실한 사랑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개인과 가족뿐만 아니라 사회와 국가를 망치는 주요 요인이었다. 각 계층의 리더들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크므로, 가진 자의 도덕적 의무 차원에서 특별히 개인의 욕망을 잘 관리할 필요가 있다. 시시때때로 생리와 심리의 불균형을 살펴, 그 원인을 제거하면 생태적으로 건강한 심신을 회복할 수 있다. 나로부터 시작된 생태적 균형이 온 인류에게 파급되면, 지구의 생태계는 다시 생명력을 회복할 수 있다.

남녀의 원초적 욕망에서 출산율 저하의 원인도 찾을 수 있다. 우리는 사랑의 관념을 왜곡시키는 음란물에 지나치게 노출되어 있다. 이러한 환경이 출산율 저하에 한몫하고 있다. 충동적인 성폭력에 의한 임신은 대부분 낙태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또한 어린 시절부터 음란물에 중독되면, 남녀 모두 뇌신경 기능이 왜곡되고 생식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진다. 섹스 산업에 AI가 이용되는 상황에서, 육체적 성교육을 균형 잡는 인문학적 성교육이 절실하다.

진실한 사랑은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만이 할 수 있다. 세속적인 사랑은 대부분 특정한 대상이나 매력 등에 대한 집착이므로, 집착하던 것이 사라지면 사랑도 소멸한다. 남녀의 사랑이 주는 큰 가르침이 있다. 건강한 사랑은 인류애의 기초가 된다. 남녀 간의 일시적인 사랑이 영원한 인류애로 승화될 때, 완전한 사랑과 자비가 된다. 이때 비로소 진정한 평화와 공존번영이 이룩될 수 있다.

수행문화전문가 = 서동석 박사 eastosuh@daum.net

고려대학교 대학원 영문학과를 졸업(문학박사)했고, 현재 에머슨하우스 교육연구소 소장이다. 서남대학교 영문학과 교수, (재)대상문화재단 이사 겸 동천불교문화재단 상임이사 겸 반야연구소 소장, 고려대학교, 광운대학교, 단국대학교 강사 등을 역임했다. AI시대 융합문명사회를 준비하는 차원에서 인간교육과 수행에 관한 집필과 연구개발을 주로 하고 있다.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열린 뮤지컬 '베토벤' 프레스콜에서 출연 배우들이 주요 장면을 시연하고 있다. 이 작품은 수백 년간 인류에게 사랑받아온 베토벤의 음악을 완성 시킨 것은 그가 말년에 만난 한 여인과의 사랑이었을 것이라는 상상력에서 만들어졌다. '사랑은 욕망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하던 그의 마음의 벽을 허문 건 귀족 여인 안토니 브렌타노였다. 그녀를 만난 뒤 베토벤의 음악 세계는 더욱 넓어지고, 청력 상실이라는 장애에도 지금까지 써왔던 어떤 곡보다도 위대한 음악들을 써 내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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