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체크=박용설 역사 칼럼니스트] “아바마마 처음 인사 드리옵니다”

며느리를 처음 본 순간 현종은 전율을 느끼며 온몸이 굳고 말았다.

수천명의 후궁을 거느렸지만 세상에서 한번도 본적이 없는 절세 미인을 본 것이다.

본관은 홍농양씨, 고조부는 수나라 시절부터 고관을 지냈으며 아버지는 지방 관리였다.

어릴때부터 단아하고 곱디고운 풍채는 백리밖까지 소문이 날 정도로 근동에선 핵인싸였다.

교육열이 대단한 숙부에게 시문과 사서삼경을 배우며 자랐는데, 매우 명석하여 책을 통째로 외웠다는 일화도 있다. 또한 기생출신 하녀에게 몰래 호선무(胡旋舞)까지 배워 재색을 겸비하였다.

그녀 이름은 양옥환(楊玉環), 15세가 넘을 때 쯤은 수도 장안까지 미모가 알려졌다.

수많은 경쟁자중 현종의 여섯째 아들 수왕이모(壽王李瑁)의 눈에 들어 17세에 결혼, 궁에 들어와 현종을 처음 알현 한 것이다

당 현종(玄宗), 이름 이융기. 개혁군주로 불리던 그는 나라를 획기적으로 개혁한 카리스마 넘치는 인물이었다. 현명한 정책과 강한 추진력으로 문화, 경제가 발전하여 태평성대를 이루고 있었다.

현종은 옥환이 아른거려 잠을 이루지 못한다.

불면증을 핑계로 아들 수왕과 옥환의 처소를 기웃거리는데, 이른바 상사병에 걸린 것이다.

여러날 고심 끝에 뾰족한 묘수가 없음을 알고 황제의 힘을 이용하여 막나가기로 결심한다.

“천하가 내것이고 내 한마디면 모두 꼼짝을 못하는데... 한 여인을 얻지못할 이유가 없다.”

인륜과 도덕, 왕가의 예절을 깡그리 무시하고 아들을 반강제로 설득과 협박, 변칙적 방법을 총동원하여 후궁으로 맞아들이는 작업을 한다.

마침내 현종은 옥환을 귀비로 봉하여 양귀비(楊貴妃)로 만든다.

화청궁

온천을 좋아하는 옥환을 위해 온천궁이었던 화청궁을 대대적으로 리모델링하여 온천탕과 호화시설등을 갖춘 궁궐로 만들고 조정까지 이사를 한다.

궁안 깊숙이 양귀비가 비밀스럽게 몸을 담그는 옥화지탕과 서가, 연회장, 처소까지 마련해 주었다.

“옥환아!” 사랑스런 이름을 부르며 현종이 나타난다.

옥환이 옥화지탕에서 영롱하고 아름다운 자태로 은은한 향내를 풍기며 그를 맞이한다.

현종은 수시로 음악을 즐기고 양귀비의 빼어난 춤사위에 넋을 잃으며 점점 그녀의 매력에 빠져든다.

그녀는 단지 미모만이 아니었다. 현종이 지은 시를 정확히 이해 했고, 현종을 능가하는 수준의 시로 응수하며 뛰어난 문재를 보여주었다.

지적인 그녀는 정치에 무관심했고 독서와 음악, 사색을 즐겼으며 사치와는 거리가 있었지만 황제가 그냥 두지 않았다.

양귀비의 소박한 마음은 아랑곳하지 않은채, 수백명의 장인을 동원하여 그녀 하나만을 위해 비단을 짜고 옷을 만들어 궁중에서 가장 눈부시고 화려하게 입히는걸 황제는 즐겼다.

고운피부를 유지하기 위해 콜라겐이 풍부한 열대과일 여지를 즐겨 먹었는데 화청궁에서 800km 떨어진 남부지방에서 나는 과일이었다.

이 과일을 병사들과 수십마리의 말을 이용 파발마를 운용하는 전담팀을 만들어 조달 하였다. 로켓배송의 창시자가 나타난 것이다.

그녀는 심성이 착하고 총명하며 지적 수준이 높아 현종과 정서적 교감까지 풍부했으니 총애하지 않을수가 없었을 것이다.

화청궁에서의 한가로이 피리를 불며 궁을 거닐던 모습, 달빛 아래 현종과 음악을 즐기던 이야기는 지금도 시와 소설로 전해진다.

사료 {구당서}, {신당서} 에는 “현종이 양귀비를 총애한 이후 후궁들에게 눈길 조차 주지 않았다”라고 기록 되어 있다.

황제의 그림자도 구경할수 없는 후궁들에게 양귀비는 시기, 질투의 대상이 되었다.

현종은 나라보다 그녀의 즐거움이 우선이고 백성보다는 그녀의 만족에 우선했다.

또한 그녀가 친인척 벼슬자리를 부탁하지 않았는데도, 황제는 그녀를 기쁘게할 목적으로 육촌오빠 양국충을 영의정까지 올리고 인척 수십명에게 벼슬을 주며 경제적 지원도 아끼지 않았다.

현종이 양귀비에 빠져 정사를 소홀히 할수록 그들은 매관매직을 비롯 각종 이권개입과 비리로 백성들의 원성이 높아져갔다.

황제는 알면서도 애써 외면하며 나라꼴은 점점 나락으로 빠뜨렸다.

755년, 마침내 안녹산의 반란으로 수도가 위험하자 황제는 피난길에 올랐다.

마외역(馬嵬驛) 부근을 지날 때...

피난행렬을 보고있던 백성들이 마침내 길을 막고 분노하여 소리친다.

“양귀비를 처단하고 양국충도 죽여라”

이에 신하들도 가세하며

“전하, 백성들의 원성을 무시하면 우리의 목숨도 부지하기 어렵사옵니다”

현종은 필사적으로 양귀비는 죄가 없다고 변호 했지만 이미 엎질어진 물 이었다.

총명한 그녀가 상황을 모를리는 없을터....

양귀비는 조용히 머리를 빗고 옷매무새를 바로 잡는다.

“폐하 고맙습니다. 비록 끝은 이리 되었지만, 소녀는 사랑 그걸로 족합니다.”

마침내 그녀는 근처 불당에서 자결하며 실오라기 같은 숨을 놓았다, 나이 37세.

황제의 분별없는 사랑으로 말미암아 잔혹한 역사의 제물로 사라진 것이다.

현종 말대로 양귀비는 황제의 총애를 받았을뿐 청치에 관심도 없었고 별 다른 죄를 저지른적이 없는데, 인척들의 전횡을 알고도 방치한 황제의 책임이 가장 컷던 것이다.

양옥환은 중국 역사상 최고 미인으로 언급 되며 ‘서시’와 함께 4대 미인으로도 꼽힌다.

정사에선 양귀비를 체구가 둥글고 풍만한 느낌의 미인이라고 묘사했는데 현대적 미인하고는 결이 다를수 있지만. 피부가 아기처럼 깨끗하게 희고 빛을 발하며 후광이 난다고 하였다.

“경국지색(傾國之色)...”

짧았기에 더욱 눈부셨던, 그래서 더 아린....

박용설 역사 칼럼니스트 finder5300@hanmail.net

금융회사에 30년간 근무하고 마라톤을 뛰고 있다.

로마사에 흠뻑 빠져 관련책을 섭렵하고 있으며 고대로마의 역사현장에 가서 배우기 위해 로마와 그리스등에서 직접 ‘한달살기’ 체험을 하면서 공부하는 열혈 역사 연구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