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베르티의 청동문(門) 조각

[비즈체크 = 박용설 역사칼럼니스트] 피렌체 공예길드에서 ‘산조반니 세례당’의 북문(北門)에 장식할 청동부조를 조각할 예술가를 공모했다. 이에 여러 예술가들이 참여했는데, 그중에서 브루넬네스키와 기베르티가 가장 뛰어난 작품을 제출하였다.

기베르티의 작품은 부드러운 구성과 우아한 곡선미를 보여줬고 브루넬레스키는 극적인 표현과 강렬한 감정을 담았는데 최종적으로 기베르티가 선정되었다.

떨어진 브루넬네스키는 크게 실망하여 조각을 내팽개치듯 버리고 건축으로 전향, 친구 도나텔로와 함께 로마로 떠나 고대로마건축을 연구하기 시작한다. (이 시절 판테온에 심취한 것이 돔 건축에 결정적 역할을 한다.)

이 때의 패배가 전하위복이 되어 르네상스 건축의 거장이 되는 결정적 전환점이 되었다.

승리한 기베르티는 북문, 동문조각에 일생의 대부분을 바친다.

돔 없는 모습으로 완공된 ‘산타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

당시 피렌체는 유럽에서 가장 부유하고 강력한 공화국중 하나였으며 도시의 위신을 생각하여 가장 큰 성당을 갖고 싶어 ‘산타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을 지었는데 본체는 완공하였으나 거대한 돔(쿠폴라)을 올릴 수 있는 기술이 부족하여 큰 원형개구부가 하늘을 향해 뚫려있는 채로 수십년간 미완성으로 남아있어 피렌체의 망신이자 기술적 도전과제로 생각하고 있었다.

1418년 피렌체 당국은 돔을 완성할 방법을 찾기위해 공모전을 개최 하였는데 기베르티,브루넬레스키를 비롯 내노라하는 건축가들이 참여했으며 최종적으로 브루넬네스키가 선정되었다.

하지만 피렌체 당국은 예술계의 핵인싸 기베르티를 브루넬네스키와 공동감독으로 임명 하였다.

조각가 기베르티가 건축에서는 무능하다고 생각한 브루넬네스키는 공동감독임명에 매우 분노, 자존심도 상하여 아프다는 핑계로 출근하지 않았다.

한편 공사 현장에서 기베르티는 혼자 아무것도 할수 없음을 깨닫고 “나도 모르겠다”며 손들어 버렸다. 피렌체 당국은 기베르티를 해임하고 브루넬네스키 단독으로 돔 공사를 총괄케 하였다.

산타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 돔 (돔 위에 사람들이 바글 바글...)

브루넬네스키는 돔 건설중 자신의 기술을 남에게 절대 공개하지 않고 관계자들에게도 설계도를 제대로 공개 하지 않았으며 인부들에게는 직접 시범을 보이며 “그냥 내가 하라는 대로 해”라고 말했다.

전통적 방법으로는 나무비계를 세워야 했는데 이전까지 한번도 해본적 없는 지름45m에 이르는 돔이 너무 거대하여 비계를 만들기도 힘들고 무게를 감당할수 없으므로 이중 돔 구조로 자체적으로 버틸수 있게 하고 피쉬본(생선뼈) 패턴으로 벽돌을 쌓아 지지력을 확보하였다.

또한 돔이 지상에서 100m이상으로 매우 높아 기존의 도르래로는 작업이 비능율적이고 시간도 많이 걸리자 브르넬네스키는 말(馬)이 한방향으로만 걸어도 동력의 방향을 바꿀 수 있는 기어장치와 도르래를 발명하여 마치 마법을 보는 듯 경이로움을 연출하였다.

피렌체의 상징 ’산타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

브루넬네스키는 자신의 아이디어를 철저하게 비공개로 했기에 다른 건축가들과 종종 설전을 벌였는데 “거대한 돔을 세울 방법을 설명해보라”고 하자, 그는 삶은 달걀을 가져와 탁자위에 세워보라고 했다. 사람들이 머뭇거리자 그는 달걀 한쪽을 살짝 깨뜨려 세우며 “내 돔도 마찬가지다. 내가 먼저 보여주면 누구든 쉽게 이해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설명하지 않겠다.” 이 일화는 나중에 ‘컬럼부스의 달걀‘ 이야기와 비슷하게 전해진다.

1436년 16년만에 마침내 가림막을 걷고 거대한 돔의 실체를 드러내자 피렌체 시민들은 하늘을 덮는 크기에 압도되어 “오 마이 갓” 하며 경악하였다.

한 신부는 “이거 괜찮은거 맞죠?” 라며 불안해 하자, 브루넬네스키는 “걱정마시오, 하나님은 이걸 무너뜨릴 방법을 모르실테니...”라고 당당하게 말했다고 한다.

’조르조 바사리‘가 그리다 사망후 ’페데리코 주카리‘가 완성한 돔 천장화

그는 판테온을 참고, 완전히 새로운 방식을 재창조하여 서양건축에서 돔 건축기술을 부활시킨 선구자가 되었다, 미켈란젤로조차 “그의 돔을 뛰어넘고 싶었다”고 말할 정도였다.

결국 브루넬네스키는 ’고대 로마 건축을 부활시키고 발전시킨 천재중의 천재‘로 추앙 받고 있으며 또한 ’원근법‘을 창시하여 르네상스시대 미술과 건축의 혁명을 가져 왔다.

브루넬네스키의 여러 작품들은 피렌체의 상징으로 보석처럼 빛나고 있다.

박용설 역사 칼럼니스트 finder5300@hanmail.net

금융회사에 30년간 근무하고 마라톤을 뛰고 있다.

로마사에 흠뻑 빠져 관련책을 섭렵하고 있으며 고대로마의 역사현장에 가서 배우기 위해 로마와 그리스등에서 직접 ‘한달살기’ 체험을 하면서 공부하는 열혈 역사 연구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