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체크=고영태 재테크 칼럼니스트] 워런 버핏이 이끄는 버크셔 해서웨이의 포트폴리오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종목은 애플이다. 한때는 버크셔 전체 포트폴리오의 절반에 가까울 정도로 보유 지분이 많았다. 그는 올해 주주 총회에서도 “애플이 버크셔 해서웨이가 보유한 아메리칸익스프레스나 코카콜라보다 훨씬 나은 기업”이라면서 특별한 애정을 드러냈다.
그런 버핏이 2024년 2분기에 최고의 주식이라고 극찬한 애플의 보유 지분을 절반가량 매도하면서 투자자들의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다. 여기에 더해 7월과 8월 초에는 뱅크 오브 아메리카 주식까지 연이어 매도하기 시작했다. 특히 애플과 뱅크 오브 아메리카는 버크셔 해서웨이 포트폴리오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1위와 2위 종목이다.
이런 버핏의 매도 움직임은 월가 투자자들 사이에 증시 고점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미국의 채권왕 빌 그로스는 지난 2일 오전 소셜 미디어 X에 올린 글에서 이번 조정장에서 저점 매수에 나서지 말라면서 반등할 때 매도에 관해 고민해야 한다고 비관적인 견해를 밝혔다. 버핏이 가장 좋아하는 애플의 지분을 절반으로 줄였다는 사실은 증시가 고점에 도달했다는 신호일 수 있다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버핏의 매도 시점이 최근 미국 시장의 급락과 맞물리면서 투자자들의 불안감은 더욱 증폭됐다. 여기에 더해 일부 언론은 버핏이 미국 주식 시장을 부정적으로 전망하면서 본격적인 현금 확보에 나서고 있다고 보도했다.
◇버크셔 해서웨이, 900억 달러 넘는 주식 처분
실제로 8월 3일에 공개된 버크셔 해서웨이의 2분기 실적 보고서를 보면 버크셔 해서웨이는 올해 상반기에 900억 달러가 넘는 규모의 주식을 매도하면서 상당한 규모의 현금을 확보한 것으로 나타났다.
<버크셔 해서웨이 상반기 주요 거래 내역>
2분기 말을 기준으로 보유 비중 상위 5개 종목의 변동 내역을 보면 버크셔 해서웨이는 상반기에만 901억 달러어치의 애플 주식을 매도했다. 또 5번째로 많이 보유하고 있는 셰브런의 주식도 2억 달러어치를 처분했다. 반면 뱅크 오브 아메리카를 비롯해 아멕스와 코카콜라는 각각 63억 달러와 67억 달러 정도의 보유 지분을 늘렸다. 이렇게 보면 그동안 주가가 많이 오른 애플을 팔고 다른 주식을 매수하면서 포트폴리오의 비중을 조절했다고 할 수 있다.
2분기 실적 보고서에는 6월 말까지 거래 내역만 포함돼 있다. 그런데 8월 초에 공개된 내부 거래자 공시 보고서인 Form 4를 보면 버크셔 해서웨이는 7월 중순부터 8월 초까지 무려 16차례에 걸쳐 뱅크 오브 아메리카의 주식을 처분한 것으로 나타났다. 7월 17일에 1,269만 주를 시작으로 8월 1일까지 모두 9천42만 주를 매도했다. 평균 매도 가격은 41.83달러로 무려 38억 달러어치의 주식을 팔아치웠다. 특히 뱅크 오브 아메리카의 지분 축소는 8월 초 주가가 크게 하락하기 직전에 이뤄지면서 시장의 불안감을 더욱 증폭시키기도 했다.
<버크셔 해서웨이 Bank of America 매도 내역>
◇버핏, 미국 연방준비은행보다 더 많은 단기 국채 보유
이 같은 대규모 주식 처분을 통해 버크셔 해서웨이가 확보한 현금과 현금성 자산은 사상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2분기 실적 보고서를 분석한 CNBC의 기사에 따르면 현금과 만기 1년 이하 단기 국채를 포함한 버크셔 해서웨이의 현금성 자산의 규모는 2천770억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불과 석 달 전인 24년 1분기의 1, 890억 달러보다 무려 900억 달러 가까이 늘어난 것이다.
<버크셔 해서웨이 현금 & 현금성 자산 규모>
버핏은 이렇게 많은 현금과 현금성 자산을 어디에 투자했을까? 애플과 뱅크 오브 아메리카 매도로 확보한 자금 대부분은 미국 단기 국채 매입에 사용됐다. 2분기 실적 보고서에 따르면 버크셔 해서웨이는 미국 단기 국채(Treasury Bills)에 2천346억 달러를 투자한 것으로 확인됐다. 현재 만기 1년 이하 단기 국채의 금리가 5% 안팎인 점을 고려하면 1년에 대략 117억 달러를 챙길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CNBC의 보도에 따르면 버크셔 해서웨이가 보유한 미국 단기 국채의 규모는 연방준비은행보다 많다. 7월 말 기준으로 연준이 보유한 단기 국채는 1,953억 달러에 달한다. 버핏은 주식 투자로 벌어들인 막대한 현금을 채권에 투자해 무위험 수익을 챙기면서 다음에 투자할 기회를 노리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버핏의 애플 매도, 인생 최고의 성공적 도박일까?
지금까지 살펴본 애플과 뱅크 오브 아메리카를 제외한 버핏의 포트폴리오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시장을 비관적으로 보고 다른 종목도 상당수 정리했을까? 8월 14일 SEC에 보고한 2024년 2분기 13F에 따르면 상위 10개 종목에는 변화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애플은 보유 물량은 1분기에 이어 2분기에도 3억 8,900만 주 가량을 처분해 현재 보유 물량은 4억 주로 줄었다. 하지만 여전히 버크셔 해서웨이의 포트폴리오에서 30%의 비중을 차지하면서 최대 보유 종목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애플에 대한 버핏의 애정이 아직은 식지 않았다는 얘기다.
<2024 상반기 버크셔 해서웨이 상위 10대 종목 변동 내역>
보유 비중 2위 종목인 뱅크 오브 아메리카(BAC)는 처분 시점이 7월과 8월이라 2분기 13F에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앞서 살펴본 것처럼 Form 4를 통해 처분 내역을 별도로 공시했다. 아멕스(AXP)와 코카콜라(KO)는 철옹성처럼 버핏의 포트폴리오에서 3위와 4위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다만 에너지 분야에서는 셰브런(CVX)의 지분을 줄인 대신 옥시덴탈(OXY)의 보유량을 23년 4분기부터 지속적으로 늘리면서 손바꿈을 한 것을 알 수 있다. 24년 1분기에 처음으로 매수해 상위 10위 종목에 편입된 보험사인 처브(CB)도 2분기에 100만 주 이상을 추가로 매수하면서 보유량을 늘린 것으로 나타났다. 기타 식품회사 크래프트 하인즈(KHC), 신용평가사 무디스(MCO) 그리고 신장 투석 서비스 기업인 다비타(DVA)의 지분에는 변화가 없었다. 참고로 지난 1년 동안 버크셔 해서웨이의 상위 10개 종목의 변동 내역은 아래와 같다.
<지난 1년 버크셔 해서웨이 상위 10대 종목 변동 내역>
이제 남은 궁금증은 버핏이 애플을 앞으로도 계속 매도할 것인지 아닌지일 것이다. 올해 3분에도 애플의 보유 지분을 줄인다면 증시 고점론이 더 힘을 얻으면서 또다시 패닉 셀이 나올 수도 있다. 현재 월가에서는 버핏의 애플 지분 축소는 30배에 달하는 높은 밸류에이션에 따른 위험 관리 차원이라는 해석이 힘을 얻고 있다. 즉 2016년 이후 지금까지 10배에 가까운 막대한 수익을 올렸고 이 가운데 일부를 정리하면서 차익을 실현한 것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얘기다. 만일 애플에 대한 장기 전망을 정말로 부정적으로 평가했다면 TSMC의 사례처럼 지분 전체를 매도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제 전문지 포천도 버핏의 애플 매도를 차익 실현의 관점에도 보도하고 있다. 포천은 5억 주가 넘는 애플 주식 매도가 버핏의 투자 인생에서 최고의 도박 가운데 하나로 기록될 것이라고 전했다. 비록 버핏이 최고점에서 팔지는 못했지만, 애플 매도보다 더 훌륭한 고점 매도 사레는 찾아보기 힘들 것이라고 덧붙였다. 기사 제목처럼 버핏의 애플 매도가 과연 그의 투자 인생에서 가장 성공적인 베팅이 될 것인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다. 오마하의 현인이 결정한 선택에 대한 평가는 현재 시장이 아니라 먼 훗날 투자의 역사가 판단해야 할 일이다.
◇13F와 투자 구루의 포트폴리오 엿보기
미국에서 1억 달러 이상을 운용하는 투자자(개인과 기관 투자자 포함)는 증권거래법(Securities Exchange Act)에 따라 분기가 종료된 이후 45일 안에 미국 증권거래위원회에 13F 공시 자료를 통해 보유 종목을 모두 보고해야 한다.
그래서 13F를 찾아보면 워런 버핏뿐만 아니라 다른 투자의 대가들이 어디에 얼마나 투자하는지 참고할 수 있다. 브리지워터 어소시에이츠의 레이 달리오, 블랙록의 래리 핑크 등 내로라하는 구루들의 포트폴리오를 낱낱이 볼 수 있다. 13F에는 해당 분기에 운용사나 헤지 펀드가 사고판 모든 종목의 정보가 담겨있다.
하지만 대부분이 투자 종목을 경쟁자에게 알려주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에 기한을 최대로 늦춰 공시한다. 법에는 분기 종료후 45일 이내라고 규정돼 있지만 그 전에 공개하는 사례는 거의 없다. 대부분의 운용사나 헤지 펀드는 분기가 끝나고 한 달 반이 지난 마지막 날에 공시하기 때문에 공개된 포트폴리오는 최대 105일의 시차가 있다는 단점이 있다.
최악의 경우 개인 투자자가 13F를 참고해 특정 종목을 매수했다해도 헤지 펀드나 운용사는 이미 그 종목을 매도했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장기적 관점에서 투자 귀재들의 포트폴리오를 참고해 우량 종목을 선택하는 자료로서 가치는 충분하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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