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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태 전 삼보컴퓨터 회장 [연합뉴스 자료사진]
[비즈체크=정구학 기자] 이용태 전 삼보컴퓨터 회장이 14일 별세했다. 향년 92세.
한국에서 개인용 컴퓨터(PC)의 상용화를 이끈 1세대 정보통신 기술인의 상징으로, 고인은 ‘삼보컴퓨터’, ‘두루넷’ 등 굵직한 산업의 주역으로 우리나라 ICT 역사의 산 증인이었다.
서울대 물리학과를 졸업한 고인은 미국 유타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 후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와 한국전자기술연구소에서 연구원 및 부소장으로 근무했다. 이 시기 고인은 국내 최초로 한글 입출력 터미널 시스템을 개발해 한국 정부의 행정전산화에도 선구적인 기여를 했다.
1980년, 고인은 “이제는 산업의 뿌리를 바꿔야 할 때”라며 자본금 1천만원으로 삼보컴퓨터를 창업한다. 이듬해 국산 최초의 상용 PC인 SE-8001을 세상에 내놓았고, 1982년에는 세계적 인기를 끌던 애플2 호환 기종 **‘트라이젬 20’**을 자체 기술로 생산하며 국내 PC 산업을 개화시켰다.
삼보컴퓨터의 등장은 국내 컴퓨터 산업 지형을 바꿔놓았다. 청계천 세운상가의 중소기업들부터 금성사·삼성전자·대우전자 등 대기업들까지 앞다퉈 PC 시장에 뛰어드는 계기가 되었고, 삼보컴퓨터는 ‘국민 PC’라는 별칭과 함께 1990년대 대표적인 IT 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인터넷이 태동하던 1996년, 고인은 한국전력과 손잡고 초고속인터넷 서비스 제공업체 두루넷을 설립했다. 당시 고속통신망은 생소한 개념이었으나, 고인은 누구보다 그 미래 가치를 내다보았다. 그는 직접 미국으로 건너가 마이크로소프트 빌 게이츠 회장을 만나 기술 협력을 논의하기도 했다.
두루넷은 국내 최초로 초고속인터넷 보급에 성공했고, 1999년엔 미국 나스닥(NASDAQ)에 상장되는 성과도 이뤘다.
삼보와 두루넷이 이후 경쟁 심화와 기술 변화 속에 경영난을 겪으며 고인은 조용히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그러나 그는 또 다른 방식으로 사회에 기여했다. ‘박약회’라는 공익단체를 설립해 인성교육 운동에 헌신했고, “지식보다 사람의 품격이 먼저”라는 신념 아래 청소년과 사회인을 위한 교육 활동을 이어갔다.
고인은 생의 마지막까지 ‘기술은 인간을 위한 것’이라는 신념을 실천한 겸허한 리더였다. 2016년, 사업 실패로 개인파산을 신청했으나, 끝까지 희망과 품위를 잃지 않았다는 것이 주변의 공통된 회고다.
유족으로는 부인과 장남 이홍순 전 삼보컴퓨터 회장, 차남 이홍선 전 두루넷 부회장이 있다.
빈소는 고려대 안암병원 장례식장 303호이며, 발인은 18일 오전 7시다.
정구학 기자 ghchung@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