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체크=장동한 전문기자]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가 분명히 있어요. 하지만 결국 중요한 건 돈이더라고요. 대밑.”
미국 몬태나주 목축업자로 4대를 이어서 평생 소들을 키워왔지만 코로나 사태로 부도 위기에 몰린 Steve 의 한탄이었다. 중요한 것은 돈이었다.
금전적 이익이 오늘날 거의 모든 생산 시장의 메커니즘을 결정한다. 투자자들은 효율성을 기준으로 글로벌 생산망과 유통망을 구축했다. 설령 신뢰성이 훼손되는 일이 발생한다 해도 이윤이 우선시되는 효율성 말이다. 비용 절감의 강박에 시달리던 기업들은 제품 생산을 해외로 이전했다. 그와 동시에 적기공급생산방식(JIT, Just In Time)과 린 생산(Lean Production)은 재고 감축을 요구했다. 이런 과정에서 언제라도 문제가 터질 수 있는 완벽한 상황이 조성됐다. 규모의 경제를 추구하는 독점 기업에게는 한때 경쟁이 치열했던 시장을 확실히 장악할 수 있는 기회가 만들어졌다. 그 결과, 일단 시장에 여하한 충격이 발생하면 물품 부족과 가격 인상이 쉽게 일어날 수 있는 구조로 바뀐 것이다. 2020-2022년 팬데믹 코로나로 이 위험성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매장의 진열대가 텅텅 비고 물가가 치솟는 와중에 독점 기업들의 이익은 크게 늘어났다. 이제는 이 모든 것들을 근본적으로 재고해 봐야 할 중요한 시점이다.(p. 385)
NY Times 경제 전문 기자 Peter Goodman 의 공급망 붕괴의 시대(How the World ran out of Everything)을 읽었다. 국제 물류와 공급망 리스크 문제에 대한 단편적인 얘기려니 싶었는데 … 지난 50년 넘게 미국이 주도한 글로벌 경제 시스템의 변화와 세계화, 중국의 부상, 글로벌 공급망 리스크, 팬데믹 코로나 위기, 공급망 재편 등 어마어마한 얘기를 구체적인 미국 비즈니스 사례를 들어 전개하고 있다.
미국 미시시피주 장난감 제조회사 gLo 의 창업자 Hagan Walker 는 세계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중국의 저가 생산에 의존하게 됐다. 그 누구보다 애국자인 워커였지만 미국 내에선 원하는 물건을 만들 수 있는 제조 여건이 도저히 안 됐다. “그냥 중국에서 만드는 게 나아요.” 상담차 워커를 만난 한 엔지니어의 김빠지는 말이었다. 2020년, 업계의 큰손인 Sesame Street 납품 건을 수주한 워커는 부랴부랴 중국 생산처에 문의 했다. 2021년 연말 크리스마스 씨즌에 맞추어 납품하려면 생산과 운송이 차질 없이 이루어져야 했다. 하지만 … 때맞춰 전대미문의 사태가 벌어졌으니 바로 팬데믹 코로나였다.
2020년말의 생산 주문 후 2021년 한 해 동안 워커는 피말리는 하루 하루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중국내 코로나 확진자 급증과 시진핑 정부의 제로 코로나 정책 강행에 따라 중국 생산 환경은 최악이 됐으니 … 주문품 생산은 짙은 어둠 속. 어떻게 어떻게 해서 겨우 물건을 만들었지만 이번엔 컨테이너 확보가 불가능했다. 전 세계인들이 집에만 틀어 박혀 있다보니 오히려 소비가 증가하면서 중국 생산 및 운송 시장은 과부하가 걸려 폭발할 지경. 마침내 겨우 생산품을 컨테이너에 싣고 가까스로 중국을 떠난 게 2021년 9월말, 납품 시한은 채 두 달밖에 안 남았으니 글로벌 공급망 마비 상황을 감안하면 저녀 안심할 수가 없었다. 그 후의 일정을 보자.
9/27 중국 닝보宁波항 출발
10/9 미국 캘리포니아 LA Long Beach 항 앞바다 도착. 엄청나게 많은 대형 컨테이너 선박들이 몇주째 바다에 떠서 화물 하역 대기 중. 끝없는 대기
11/3 거의 한달만에 컨테이너 하역. 창고에서 대기
11/9 트레일러 운전기사 공급 부족으로 일주일만에 내륙 운송 시작
11/15 미시시피 gLo 창고 도착
코로나 사태가 없었다면 두세 달 내에 끝낼 수 있을 비즈니스를 워커는 만 일년이 걸려 겨우 납품할 수 있었는데, 그 당시 많은 기업들이 비즈니스에 실패했던 걸 감안하면 그나마 운이 좋았던 케이스다. 이게 당시 코로나 위기 때 벌어졌던 글로벌 공급망 붕괴 상황의 분명한 예이다.
코로나가 극히 예외적인 비정상 상태였고 위기 상황이 끝나면 세계는 다시 정상 상태로 되돌아 갈 수 있다고 장교수는 생각했었는데 … 내면을 살펴 보니 그게 아니고 위험한 상황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 같다. 우리가 지난 50년 넘게 만들어 놓은 글로벌 경제 시스템(자본 논리와 효율성 최우선. 자유무역. 세계화. 저가 생산의 중국 의존도 심화. 규제 완화. 글로벌 인수 합병과 독과점 대기업의 탐욕. 경제적 취약계층 확산 등) 자체가 이제 매우 위험한 구조가 돼버린 까닭에 세계는 언제라도 외부 충격이 가해지면 쓰러질 ‘영구적 취약성’ 상태가 되었다. 재수가 없어 사고가 나는 게 아니라 그동안 재수가 많아서 사고가 덜 났지 싶을 정도가 된 건데, 이거 무쟈게 무서운 일 아닌가? 리스크 사회 수준이 아니라 세계 전체가 리스크 세계다. 글로벌 공급망 붕괴. 팬데믹. 기후변화. 환경 파괴. 전쟁. 테러. 경제 위기. 정치적 혼란. 보호무역주의 확산. 반도체 전쟁. AI 위험 등의 메가톤급 리스크에서 이제 세계 어떤 나라도 저녀 자유롭지 못하다. 어찌해야 하나? 결국 세계 모든 나라들이 다 함께 협력하여 살 길을 모색할 수밖에 없는데, 2025년초 우리가 사는 세상은 각자도생을 하기 바쁜듯 하니 … 심히 정말로 심히 걱정스럽다. Dear God, please bless our world.
P. S. Peter Goodman 왈 “제 때(just in time)보다 만일의 사태(just in case)에 대비한 생산과 공급 시스템이 되어야 한다."
정확한 지적이다.
리스크 관리의 핵심 아닌가?
장동한 리스크관리 전문기자(건국대학교 명예교수) dhchang@konku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