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생들이 숲
속에서 기 수련 자세를 취하고 있다.[연합뉴스]
[비즈체크=서동석 수행문화전문가] 주체와 객체는 서양철학의 오랜 상대적 관념이다. 상대적 물리법칙은 현상세계에 절대적인 위력을 발휘했다. 그러나 서양의 우주관과 물질관은 물리학의 발전과 더불어 깨지기 시작했다. 현대물리학은 대우주와 미시세계가 물리법칙을 초월한 불확정성을 지닌 사실을 밝혀내기도 했다. 본질에 관한 서양과학의 완전한 결론은 아직 도출되지 않았다. 반면에 동양철학은 상대적인 다양성의 세계와 절대적인 통일성의 세계를 동시에 말하고 있다. 첨단물리학이 발전할수록 동양의 성인(聖人)들이 말씀한 현상과 본질을 융회관통(融會貫通)하는 진리가 미약하나마 드러나고 있다.
서양이 통일성의 세계에 대해 눈을 뜨기 시작한 것은 사실 오래된 일이다. 동서양의 교류는 실크로드(Silk Road)를 통해 고대로부터 이어져 왔다. 무역상들이나 종교인들은 죽음을 무릅쓰고 그 험난한 길을 다녔지만, 일반인들에게는 마치 신기루처럼 그 실체가 잘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플라톤과 같은 혜안이 있는 선각자들은 동양이 지향하는 통일성을 인식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서양철학과 과학자들은 관념적으로 통일성을 얘기했다. 그것은 서양의 종교 그리고 정치와 관련이 깊다. 중세시대에 통일성의 정신세계는 교황이나 황제의 권위를 상징하기 때문에, 일반인들이 그것을 논하는 것은 불경스러운 일이었다. 전통적 관념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들은 큰 비판이나 처벌을 받았다. 예를 들어, 갈릴레이는 지구가 돈다는 주장으로 종교재판에 회부되었다. 이런 사정 때문에, 서양철학은 현상세계를 중심으로 발전할 수밖에 없었다.
15세기 대항해시대 이후, 동서양의 문명교류는 본격화 되었다. 그 당시에는 교류라기보다는 열강들의 일방적인 약탈에 가까웠다. 17세기에 북아메리카 대륙에 식민지가 건설되고, 18세기에 미합중국은 탄생되었다. 동서의 만남이 대원환의 결실을 맺는 과정에서, 이질적인 인종과 문화 사이에 갈등과 고통은 동반되었다. 서양의 합리적인 사고방식으로 문명사적 대립은 해소되지 않았다. 19세기에 이르러 에머슨(Ralph Waldo Emerson)은 다양성과 통일성의 이질성을 공존시키는 초절주의를 창시함으로써, 문명의 거친 융합이 만든 상처를 치유하는 문화적 틀을 제공했다.
개체 중심의 물질세계와 전체를 아우르는 정신세계는 에머슨의 사상 속에 잘 녹아있다. 에머슨의 시(詩) 중에서 〈개체와 전체(Each and All)〉는 두 세계의 보이지 않는 상호연관성과 총체성을 우리에게 말해준다. “모든 것은 개체에 필요하다네./ 어떤 것도 홀로 좋거나 아름답지 못하리.” 물질이든 정신이든, 모든 것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하나의 귀결점에 서양철학이 꿈꾸는 이데아(Idea)의 세계이자, 동양철학이 추구하는 도(道)의 경지가 있다. 모든 학문이 귀결되는 곳은 인간의 본성이고, 그 구현은 수행(修行)의 길이다.
물질은 진리로 통하는 현상의 문(門)이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정신은 본성(本性)으로 돌아가는 의식의 통로다. 현상과 의식 속에는 경험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물질세계와, 인식작용을 떠난 불입문자(不入文字)의 정신세계가 공존하고 있다. 과학적으로 설명하자면, 나비 효과(butterfly effect)를 예로 들 수 있다. 나비의 작은 날갯짓은 현상세계에서 아주 미미한 변화에 불구하지만, 그것은 나중에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결과나 파장으로 확대될 수도 있다. 나비의 날갯짓이 일으킨 파동이 증폭되는 과정에는 물질과 정신의 에너지가 결합되어 있다.
경제구조가 폐쇄적인 산업시스템에서 열린 산업체계로 진행될수록, 물질과 정신의 융합이 중요해진다. 그러나 물질 중심의 문화에서 물질과 정신의 융합문화로 전환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현재 AI시대로 가는 길목에서 벌어지는 각종 갈등과 분쟁도 나비효과와 같은 과정을 겪을 수밖에 없다. 중요한 것은 물질적 대립을 화해시키는 데는 정신문화가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우리 시회의 갈등과 대립도, 본질적으로 보면, 물질적 가치의 대립을 조율하는 중도적 정신문화가 부족하기 때문에 일어난 현상이다. 따라서 물질과 관념에 매몰되어 있는 사회를 소통시키는 계기가 무엇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그 계기를 마련하는 원동력은 윤리도덕과 양심의 회복이다.
물론 지금까지 물질 중심의 사업에서도 윤리도덕은 중요한 요소다. 기업문화가 발달한 서양에서 기업윤리를 강조하는 것은 이와 무관하지 않다. 실제로 100년 이상 장수하는 기업들에서, 상당히 높은 수준의 경영철학을 엿볼 수 있다. 반면에 경영문화의 수준이 낮은 기업일수록, 성공이 빠른 만큼 몰락도 빠른 편이다. 극단으로 치닫기 쉬운 물질을 균형 잡는 것은 정신이다.
도덕적인 삶은 가장 경제적인 삶이다. 윤리도덕과 실용주의가 절묘하게 만나는 지점에, AI시대의 핵심가치인 수행문화와 인간교육이 있다. 국호로 대한민국을 쓰고 있는 우리나라가 AI시대에 살아남고 번영하기 위해서는, 정신문화를 꽃피우는 길밖에 없다. 대(大)라는 글자는 본래 진리나 진리를 증득한 존재 등에 붙이는 칭호다. 따라서 우리가 대한민국이란 이름에 걸맞은 도덕과 문화를 선양할 때, 우리나라는 세계의 중심국가가 될 수 있다.
고조선이 한때 세상의 중심을 이루었던 것은 수행정신문화가 융성했기 때문이다. 조선은 고조선의 영광을 잇기 위해 국호를 그대로 가져왔지만, 결국 패망하고 말았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지만,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고조선의 정신문화를 계승하지 못한 데 있다. 사회 지도층이 바른 도덕에 근거한 정신문화를 상실하면, 사회는 급속도로 몰락하기 마련이다.
사회의 갈등과 대립을 화합으로 유도하는 바른 길은 보편적 윤리도덕을 세우는 일이다. 그러나 공자나 노자를 아무리 배우고 연구해도, 우리는 공자나 노자가 될 수는 없다. 핵심은 성인들의 정신으로 보편성을 추구하고, 동시에 자신의 상황에 맞게 정체성을 구현하는 일이다. 보편타당한 진리의 정신을 사회현실에 맞게 실천하는 수행문화 속에 대화합의 열쇠가 있다. 대화합의 길은 삶의 양극적 모순을 통섭하는 수행문화정신의 실질적 함양에 있다.
수행문화전문가 = 서동석 박사 eastosuh@daum.net
고려대학교 대학원 영문학과를 졸업(문학박사)했고, 현재 에머슨하우스 교육연구소 소장이다. 서남대학교 영문학과 교수, (재)대상문화재단 이사 겸 동천불교문화재단 상임이사 겸 반야연구소 소장, 고려대학교, 광운대학교, 단국대학교 강사 등을 역임했다. AI시대 융합문명사회를 준비하는 차원에서 인간교육과 수행에 관한 집필, 연구개발과 더불어 수행건강교육문화 보급에 나서고 있다.
<방문 강의 및 컨설팅>
급변하는 시대에는 공공기관, 기업 등에서 대표와 임직원의 바른 인식전환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1)AI시대 어떻게 살 것인가, 2)수행과 건강한 삶, 3)건전한 기업정신문화, 4)초융합사회의 인간교육, 5)자녀리스크 관리 등에 관한 단체 강의, 개별 컨설팅, 그리고 단계적인 균형조율프로그램을 선택적으로 진행합니다. 이메일(eastosuh@daum.net)로 예약 받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