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체크=서동석 수행문화전문가] 소리는 생명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와 같다. 태아는 어머니 뱃속에서 부모의 소리를 듣고 생명을 키운다. 특히 어머니의 모든 생명활동은 그대로 소리의 파장으로 태아에게 전달된다. 소리는 또한 생명의 마지막을 인도하는 신호이기도 하다. 임종 후에 다시 살아난 사람들이 사후에 겪은 일들을 전하는 일화를 들으면, 소리의 중요성을 알 수 있다. 임사체험이나 최면을 통해 알 수 있는 전생의 여러 사례들을 종합하면, 사람의 숨이 끊어져도 얼마 동안은 이근(耳根)은 살아서 주변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한다.
우리말에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는 속담이 있다. 말을 함부로 하면 안 된다는 의미다. 식물인간도 말을 듣는다는 사례가 보도되었다. 남아프카공화국의 마틴 피스토리우스(Martin Pistorius)는 13년간 식물인간으로 지내다가 기적적으로 깨어났을 때, 놀랍게도 그가 그동안 자신을 돌본 사람들의 얘기를 듣고 있었다고 해서 세상을 놀라게 했다. 부지불식간에 소리는 모든 생명을 이어주는 영적 기능을 하고 있다.
소리의 파동 속에서는 생명의 정보가 담겨있다. 첨단 물리학의 발전으로, 모든 물질에는 파동과 입자가 동전의 양면처럼 함께 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동안의 과학은 입자 중심으로 물질의 융합에 중점을 두고 발전했다. 앞으로 미래과학은 상대적으로 파동의 역할이 더욱 커지면서, 궁극에는 두 가지 요소가 융합하는 시대가 된다. 문제는 파동을 보면 입자가 안 보이고, 입자를 보면 파동이 사라진다는 데 있다. 따라서 융합의 방식이 기계적인 융합이 아니라, 양극적 요소가 이율배반적으로 함께 공존하는 방식이 될 때, 물질과 정신이 진정으로 융합하는 문명사회가 열린다.
파동은 정신세계와 연결된다. 이 점에서, 융합문명사회를 여는 핵심 열쇠는 소리의 파동을 이해하는 데 있다고 할 수 있다. 소리의 파장 속에는 정신의 숨결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좋은 뜻이 담겨있는 글을 읽으면, 마음속이 정화되고 의지를 굳건히 할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서당식 교육을 예로 들을 수 있다. 서양의 근대식 교육이 들어오기 전에는, 서당과 같은 소규모 공간에서 이해하기 힘든 내용을 암송하는 것이 주된 교육이었다. 단순해 보이는 암송교육을 통해 그 당시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예의범절과 심오한 도리를 깨칠 수 있었다. 또한 어린 시절에 머릿속에 박힌 지혜의 씨앗들은 성장하면서 다양한 경험을 통해 자연스럽게 삶의 지혜로 발현되었다.
요즘에 고등교육을 받은 아이들과 예전에 서당식 교육을 받고 자란 사람들을 비교해보면, 서당식 교육이 상당히 큰 교육적 효과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같은 연령대에서 양쪽의 의식 수준을 비교해보면, 큰 차이가 난다. 삶의 도리를 중심으로 교육 받은 사람들은, 처세에 있어서, 단순한 정보 위주의 교육을 받고 자란 요즘 아이들보다 훨씬 의식수준이 높았다. 소리와 뜻이 하나가 되어 의식과 무의식 양쪽에서 상승작용을 했기 때문이다.
소리의 이해방식은 언어마다 다르다. 언어 체계는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결정한다. 어떤 언어보다 한글은 세상의 변화 흐름을 바르게 인식할 수 있는 소리문자의 체계를 지니고 있다. 한글은 천지인(天地人)과 오행(五行)의 이치로 만든 소리문자다. 기본 모음인 ‘ㆍ’는 하늘, ‘ㅡ’는 땅, 그리고 ‘ㅣ’는 사람을 상징한다. 그리고 혀와 구강의 모양을 본뜬 기본 5자음은 목화토금수(木火土金水)의 기운을 담고 있다. ‘ㄱ’은 목(木), ‘ㄴ’은 화(火), ‘ㅁ’은 토(土), ‘ㅅ’은 금(金), 그리고 ‘ㅇ’은 수(水)의 기운이 있다. 그러므로 모음과 자음이 조화를 이룬 한글을 바르게 발성하면, 심신은 기운의 균형을 이루며 건강해진다. 한글에 내재된 심신치유의 음성학적 메커니즘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오행의 기운을 소리로 가장 분명하게 발음할 수 있는 언어는 우리 한글이 유일하다. 어떤 생명 정보도 한글로 표현할 수 있다. 이 점에서, 나는 우리에게 필요한 외래어를 한글로 표현하는 것에 대해서 찬성하는 편이고, 실제로 그렇게 하고 있다. 영어에 각종 외국어가 편입되어 다양하고 풍부한 문화가 융합되었듯이, 한글도 융합문명시대의 흐름에 맞게 고유한 낱말의 보존과 더불어 외래어의 적절한 수용을 통해 우리말의 폭과 깊이를 확장할 필요가 있다. 물론 공중도덕을 해치는 표현은 삼가는 것이 좋다. 언어생활에도 절제가 필요하다.
언어현상을 보면 사회의 풍속과 문화를 알 수 있다. 현대인의 분열된 의식은 파편화되어 있는 언어의 내용, 의미, 형식 등에서 엿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노래의 가사는 매우 슬픈데, 리듬과 박자는 반대로 지나치게 경쾌하다. 또 다른 예로, 말을 지나치게 축약함으로써 소리가 분절되는 현상이 생기고 있다. 마치 물화(物化)된 인간의 소외를 투영하는 것 같아서 왠지 서글프다. 긴 명칭을 줄여서 부르는 것은 필요하겠지만, 올바른 단어를 줄이거나 비틀어 소리를 내는 것은 사회의 풍속뿐만 아니라 개인의 건강에도 좋지 않다. 이런 풍조가 사회에 만연하면 사회질서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세종대왕이 창제한 훈민정음(訓民正音)의 의미처럼, 한글은 본래의 바른 소리를 낼 때, 사람들의 의식을 바르게 깨우는 교육기능을 하게 된다.
유아기에 아이의 뜻을 바르게 심는 데 부모의 역할은 특히 중요하다. 부모가 좋은 내용을 분명하게 발음하면, 소리와 뜻의 인식체계는 아이의 의식 속에 바르게 자리 잡게 된다. 이 과정을 통해 부모도 새롭게 학습하는 계기가 된다. 초등학교 저학년까지는 아이 스스로 바른 소리를 내는 연습이 필요하다. 정부 차원에서 어린이를 위한 제대로 된 한글 발성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보급하는 정책마련이 절실하다. 이 일은 우리문화의 세계화에도 크게 기여할 수 있다.
음성의 이치가 확립된 후에는, 소리를 내지 않고 마음속으로 읽어도 의식의 파장이 울리게 된다. 유아기에 소리 훈련이 중요하듯이, 노인에게도 소리는 매우 중요하다. 임종 시에 평소 자신이 믿는 종교의 말씀이나 신앙대상의 명호를 마음속으로 염송(念誦)하면, 죽음의 두려움을 이겨내고 편안히 눈을 감을 수 있다. 믿음의 소리가 의식을 고요하게 전환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평소에 소리수행이 체득되어있지 않으면, 이런 효과를 볼 수 없다.
이처럼 소리는 생활수행의 큰 공부거리다. 소리와 뜻이 조화를 이루면, 효과가 더욱 높다. 그런 의미에서, 성인(聖人)의 말씀을 가까이 두고 틈나는 대로 읽으면, 마음이 맑고 밝아진다. 여기에 그에 상응하는 행동이 이어지면, 진리가 삶속에서 체화되는 최상의 효과를 볼 수 있다. 진리를 체화하기 위해서는, 먼저 뜻을 바르게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무엇보다 보편적인 진리 추구를 최고의 선(善)으로 삼아야 한다. 그런 다음에 자신의 개성과 능력을 개발하고, 그 바탕 위에 사회를 위한 봉사를 목표로 하는 것이 순리다. 이렇게 할 때, 우물 안 개구식의 작은 성공이 아닌, 개인과 사회공동체 모두를 위한 진정한 성공을 이룰 수 있다.
수행문화전문가 = 서동석 박사 eastosuh@daum.net
고려대학교 대학원 영문학과를 졸업(문학박사)했고, 현재 에머슨하우스 교육연구소 소장이다. 서남대학교 영문학과 교수, (재)대상문화재단 이사 겸 동천불교문화재단 상임이사 겸 반야연구소 소장, 고려대학교, 광운대학교, 단국대학교 강사 등을 역임했다. AI시대 융합문명사회를 준비하는 차원에서 인간교육과 수행에 관한 집필, 연구개발과 더불어 수행건강교육문화 보급에 나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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