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체크=서동석 수행문화전문가] 인간은 자연의 일부로서 대자연과 떨어질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다. 고대인은 자연에 순응하며 살았다. 인류문명이 점차 발전하면서, 인간은 자연의 변화와 질서를 역행하며 살기 시작했다. 다행히 자연 자체에 있는 생태적 정화력(淨化力) 덕분에, 인간이 만든 무질서와 오염은 물질문명이 본격화되기 전까지는 큰 문제가 아닌 것처럼 보였다. 오히려 산업과학의 발전으로 개발된 문명의 이기(利器)들은 기아, 질병, 재난 등을 해결하는 축복과 같은 선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상황은 인류의 기대와는 다르게 전개되고 있다.
인간 중심의 물질적 질서가 공고히 구축될수록, 인간사회와 자연 생태계의 분리는 심화되고 있다. 현대인은 겉으로 보기에는 대단히 화려하고 편리한 문명 속에 살고 있지만, 자연의 생태계 파괴는 부지불식간에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현재 지구촌의 각종 자연재해는 자연 자체의 정화능력이 한계에 이르렀음을 알리는 신호다. 열역학 제2법칙인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처럼, 생태계의 무질서를 해결하려는 인간의 노력들이 오히려 더욱 큰 무질서를 양산하고 있다. 이것은 총체적인 생태계망을 망각하고, 부분적이고 임시방편적인 대처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관점을 좁혀서 우리 사회를 보면, 산업화 덕분에 전체적인 생활환경의 개선과 의료수준의 향상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삶의 질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얻은 것 못지않게 잃은 것이 많다. 우리는 자연과 멀어짐으로써, 자연의 본질과 통하는 ‘인간 본성(human nature)’을 상실하고 있다. 평균수명은 증가했지만, 정신이 빠진 채 육체적 수명만 길게 연장하고 있는 상황이다. 생명공동체의 본질인 생명의식의 부재는 생태계 파괴의 가장 근원적인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성 상실의 직접적인 원인은, 앞서 〈수행은 인생학이자 죽음학이다〉에서 지적했듯이, ‘분업화된 효율성’이 세상을 지배한 데서 찾을 수 있다. 산업사회의 역군들은 분업화된 영역에서 생산성을 극대화 하는 역할로 존재했었다. 분업화된 역할에는 인간성이 개입할 여지가 적다. 이 때문에 특히 분업화 밀도가 높은 기업에서 퇴직한 사람일수록 세상에 나오면, 자신의 총체적 정체성을 찾기 힘들다. 자기의 본성과 동떨어진 물리적 환경에서 청춘을 바쳤지만, 세상은 그 노고를 제대로 보상하지 않는다. 물질 중심의 사회보장 제도로는 인간 존재의 본성을 회복시킬 수 없다.
역(易)의 관점에서 보면, 인간성 상실의 근본원인은 천지인(天地人)의 화합이 깨진 데 있다. 효율 중심으로 시간은 초 단위 이하로, 공간은 번지수로 쪼개져서 활용되고, 더불어 인간은 전문화된 역할로 물화(物化) 되었다. 천지인의 조화가 무너진 결과, 우리의 삶은 분열되었다. 몸은 세포 단위로, 마음은 신경조직으로, 그리고 인간관계는 이해타산으로 분리되어 생명의 총체성이 사라졌다. 우리가 눈앞의 이익에 사로잡혀 있는 동안에, 전체 생명현상의 균형은 붕괴되었다.
몸, 마음, 그리고 삶이 분열되어 존재하는 허상의 인간이 겪게 되는 실질적인 증상은 정신적 소외다. 자신의 몸과 마음과 삶을 총체적으로 인식하지 못하면, 모든 관계에서 자신의 중심을 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소외가 깊어지면, 반사회적 심리상태를 유발하게 된다. 개인의 인간성 파괴는 부조리한 사회 상황과 맞물리면, 사회를 파괴하는 강력한 요인이 된다.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되는 사이코패스(psychopath)가 점점 증가하는 것은 이러한 악순환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삶의 총체성을 회복하는 최고의 방법은 수행(修行)이다. ‘행(行)’이라는 말이 의미하듯이, 수행은 몸과 마음과 삶의 흐름을, 천지인의 총체적 관점에서, 바르게 소통하는 일이다. 철학이 우리의 삶을 진공상태에서 관념적으로 이해한다면, 수행은 삶의 현장에서 자발적이고 통합된 직관적 인식을 목표로 한다. 따라서 수행은 자기중심적인 관념을 배제하고, 지금 여기에 존재의 모든 총체성을 부여하려는 노력이다. 나와 모든 생명을 하나로 연결하는 작업이다.
인간은 사회적 존재로서 사회적 역할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인간은 고정된 관계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매 순간 새로운 생명현상의 관계에 놓여 있다. 전체 생명공동체의 관계망이 끊임없이 유동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정된 사회적 역할에 매이지 말고, 본질과 현상 양면에서 자신의 본질적 존재와 상황의 변화에 따른 구체적인 역할을 동시에 바라보는 연습이 필요하다. 그 연습이 바로 수행이다. 물론 총체성을 회복하는 과정이 말처럼 쉽지는 않다. 그 과정에는 인고의 시간이 요구된다. 그러므로 공동체 차원의 따뜻한 배려와 적절한 교육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AI는 인류의 미래에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분리된 모든 정보를 통합하는 장점을 수행문화에 활용한다면, AI는 인간의 삶을 혁신하는 매개역할을 할 수 있다. 반면에 인간의 보편정신이 결여된 물질과학에만 활용된다면, AI는 인류의 종말을 예고하는 터미네이터와 같은 존재가 될 수도 있다. AI가 선도하는 미래사회는 결국 인간의 정신태도에 의해 결정된다. 그러므로 인간 본성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천지인을 하나로 연결하는 혼연일체의 삶을 지향할 수밖에 없다.
AI시대 인류의 생존은 수행을 통해 다양성의 물질세계와 통일성의 정신세계를 하나로 융합하는 의식전환에 달려있다. AI가 만들어내는 첨단 과학문명을 정신문화를 통해 조화롭게 융합하는 방향이 인류가 살 길이다. 우리 사회의 모순과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도 여기에 있다. 총체적인 관점에서 보면, 사회의 불균형과 갈등은 우리 모두의 잘못이다. 따라서 인간 생태계의 질서회복은 우리 모두가 유기적 전체로서 공동 생명체를 이루고 있다는 자각에서 시작한다.
‘우리’라는 말은 참으로 좋은 우리말이다. 그 말 속에 너와 내가 하나라는 공동체 의식이 담겨 있다. 공동체 의식을 회복하기 위한 전제조건은 진실한 삶에 대한 각성이다. 생명공동체에 대한 바른 인식에서, 대용서와 대화합의 정신이 나오는 법이다. 그때 비로소 계층 간의 차이를 이해하고, 서로 용서할 수 있다. 더불어 사회의 균형을 조율하는 노력을 함께 기울일 때, 갈등을 해소하고 분열을 하나로 융합할 수 있다.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수행 정신을 발휘해서, 개인과 사회의 총체성을 회복하길 소망한다.
수행문화전문가 = 서동석 박사 eastosuh@daum.net
고려대학교 대학원 영문학과를 졸업(문학박사)했고, 현재 에머슨하우스 교육연구소 소장이다. 서남대학교 영문학과 교수, (재)대상문화재단 이사 겸 동천불교문화재단 상임이사 겸 반야연구소 소장, 고려대학교, 광운대학교, 단국대학교 강사 등을 역임했다. AI시대 융합문명사회를 준비하는 차원에서 인간교육과 수행에 관한 집필과 연구개발을 주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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