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하는 세계 질서와 지재권 보호

이승룡 변리사(한양특허법인)

bizcheck114@naver.com 승인 2024.08.22 13:51 의견 0
이승룡 변리사


[비즈체크=이승룡 변리사] 2020년에 시작된 3년 여의 코로나 기간에 쌓였던 억압에 분풀이라도 하려는 것일까. 작금의 세계는 억제되지 못한 갈등의 분출을 넘어 끝날 줄 모르는 전쟁 뉴스가 일상의 소식이 되어가고 있다. 2022년 2월 러시아의 침공으로 시작된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은 외교적 해결이 요원하다. 한편에는 우크라이나를 편입시키려는 NATO의 확장 정책이, 다른 한편에는 이를 실존적 위협으로 간주하는 러시아의 무력행사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어 접점이 보이지 않는다. 또한 2023년 10월 7일 하마스의 공격으로 발발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은 유엔 국제사법재판소의 판결과 미국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후티, 헤즈볼라, 이란 등으로 확전될 리스크가 상존하고 있다.

전쟁은 평화와 번영에 쏟아부은 인류의 노력을 헛되이 하고 인류애를 말살한다. 전쟁을 멈추는 해결 방안의 도출이 일러도 11월 미국의 대선 전까지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속히 대화와 타협, 외교적 해결이 성과를 만들어내고 전쟁의 참상을 전하는 뉴스가 어서 그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한편, 오늘의 세계에서 지속되는 전쟁은 지식재산권 보호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 전쟁은 군사적, 정치적 영역의 문제일 뿐이고, 지재권 보호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일까. 만일, 영향이 있다면 지재권 보호에 긍정적일까, 아니면 부정적일까. 필자에게는 지금의 전쟁이 당사국만이 아니라 경제 블록 간의 대결과 충돌의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는 점에서 지재권 보호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염려가 있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은 당사국 두 나라만의 문제로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대리전의 양상을 보이고 있다. 한편에서는 미국을 비롯한 32개 NATO 회원국의 상당수가 직간접적으로 우크라이나를 지원하고 있고, 다른 한편에서는 직접적인 군사적 지원은 아니더라도 러시아에 대한 경제제재를 무력화시킬 만큼 BRICS 국가 간의 협력이 강화되고 무역거래가 더욱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러시아에 대한 경제제재는 성공하지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중국, 인도와의 교역을 촉진시켜서 오히려 러시아 경제를 성장시키고 유럽 경제를 위축시켰다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전쟁 직후 급락하였던 러시아 루블화의 가치는 전쟁 이전으로 회복된 지 오래다.

군사적 충돌만이 아니라 무역전쟁도 격화되고 있다. 중국산 전기차에 대해서 바이든은 25%의 관세를 연내에 100%로 올리겠다고 예고하였고, 이에 질세라 트럼프는 중국이 멕시코에서 제조하는 자동차에 대해서도 100%~200%의 관세를 부과할 것이라고 경고하였다. EU도 7월부터 중국산 전기차에 대해 27%의 관세를 최고 48%로 인상하였고, 11월부터는 향후 5년 간의 확정관세로 유지할것인지를 결정하게 된다. 바야흐로 본격적인 경제전쟁이 경제 블록 간의 대결로 치닫는 양상이고, 이러한 대치 국면을 ‘세계는 신냉전 시대’라고 지칭하기도 한다. 세계 GDP 통계를 보면 경제 블록 간의 대결이 기우가 아니라 현재 진행형이라는 사실에 더욱 수긍할 수 있다. 세계 GDP의 32.1%를 차지했던 BRICS가 사우디 등 6개 신규 회원국의 추가 가입으로 11개국 체제가 되면서 그 비중이 35.7%가 되었고, 이에 따라 세계 GDP의 29.9%를 차지하는 G7과 그 격차를 더욱 벌리게 된 것이다. BRICS의 위상이 분명히 전과는 크게 달라진 것이다.

그렇다면, 우크라이나 전쟁이 격화되는 상황 속에서 만일 러시아에서 미국 특허권자의 침해소송이 제기된다면 러시아 법원에서는 미국의 특허권자에게 승리의 손을 들어줄 것인가. 100%, 200% 관세 폭탄을 맞는 마당에 중국의 법원에서는 미국 자동차회사의 전기차 특허권을 제대로 보호해 줄 것인가. 거꾸로 중국 특허권자의 전기차 특허침해소송이 미국에서 벌어진다고 상정한다면, 미국에서는 중국 특허권자의 보호에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선뜻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까.

나아가, 미국의 동맹국인 한국이나 일본에서, 미국의 적대국으로 간주되는 러시아 또는 중국 회사와 미국 회사 간에 지재권 분쟁이 벌어진다면, 우리나라 사법부에서 객관적인 판단에 행여 한 치의 빈틈이 생기는 일은 없을까. 만일 지재권 이외의 문제로 지재권 침해의 판단이 달라진다면, 혹시라도 지재권 보호에 부족한 점이 눈에 띈다면, 그렇지 않은 경우에도 특허침해소송에서 패소한 권리자가 판결이 부당하다고 반발하게 된다면, 그렇다면 패소한 권리자는 지재권이 제대로 보호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대한민국에 특허와 상표출원을 줄이게 되는 것은 아닐까.

이러한 사정은 우리나라 기업이 외국에서 지재권을 확보하고 보호받으려고 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될 것이다. 이러한 설정이 지나친 단순화에서 비롯되는 오류라고 비판받을 수는 있겠지만, 세계의 군사적 충돌과 무역전쟁의 격화는 지재권 보호에 결코 긍정적이지 않다는 점은 분명하다고 생각된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세계의 지재권 보호에 장애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는 것이다.

세계 무역은 1995년에 설립된 WTO 체제를 계기로 크게 확대되었다. 출범 당시의 128개 회원국은 현재 166개 회원국으로 늘어났고, 회원국 간 교역은 세계교역의 99%를 차지하고 있다. 차별 없는 무역을 추구하고 공정한 경쟁을 장려하는 것이 WTO의 주요 원칙이다. 무엇보다도 WTO 회원국 모두는 그 부속협정인 TRIPS(무역관련 지적재산권 협정)에 서명함으로써, 지재권의 효과적이고 적절한 보호를 약속하고 이행하여해 왔다.

이러한 지재권 보호는 한 나라 안에서 또한 국가 간의 교역에서 공정한 경쟁을 뒷받침해 주는 합리적인 제도로 발전되어 왔다. 그러나 전쟁과 경제 블록 간의 대결로 치닫는 지금의 세계 질서 변화는 무역거래 질서를 훼손하고 지재권 보호를 위협하는 변수로 떠오를 수 있다.

만일 지재권의 객관적인 보호에 균열이 생기고 지재권 보호의 흐름이 역방향으로 퇴보한다면, 창의와 혁신이 장려되지 못함으로써 인류의 발전과 번영의 속도가 느려지게 될 것이다. 어서 전쟁이 종식될 것을 염원하고, 지재권 제도 발전이 계속되어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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