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과 역(易)의 지혜

변화의 이치와 수행의 도리는 상통(相通)

bizcheck114@naver.com 승인 2024.08.05 10:53 의견 0

강원 고성군 건봉사유적지탐방길에서 열린 '갈래구경(九景)길 걷기대회'에 참가한 주민들과 수행승들이 극락왕생한 '등공대'에 오르고 있다.[연합뉴스]


[비즈체크=서동석 수행문화전문가] 수행(修行)은 몸과 마음과 삶의 변화를 바르게 조율해서, 의식을 깨우고 진실한 삶을 추구하는 일이다. 역(易)은 달(月)과 해(日)가 대표하는 음(陰)과 양(陽)의 변화를 통해 인간이 나아갈 바를 제시하는, 천문(天文)과 인문(人文)이 결합된 학문이다. 고대의 학문은 단순한 이론과학이 아닌, 실질적인 삶의 융합과학이었다. 수행과 역의 공통점은 세상의 상대적 변화의 모순 속에서 중도적 삶을 통해 의식상승을 이루는 일이다. 우리의 몸과 마음과 삶은 시시각각 큰 변화 속에 생명의 원환을 이루고 있다. 우주도 고요한 듯하지만, 엄청난 변화의 흐름 속에 거대한 원환을 그리고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는 자전과 공전을 하고 있고, 지구가 속한 태양계 역시 은하핵 주변을 돌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내부의 미세한 변화뿐만 아니라, 외부의 거대한 흐름도 느끼지 못하고 있다.

역(易)은 천문의 변화와 인간의 흥망성쇠를 연결하여, 인류문명사의 흐름을 밝히고 있다. 나는 공자가 새롭게 정리하고 해설한 《주역》이 역술서가 아니라, 수행서(修行書)라고 주장한 바 있다. 공자는 나이 50부터 죽간(竹簡)으로 된 역을 20여 년간 닳도록 참구해서, 70세에 이르러 도(道)를 깨달았다. 공자가 깨친 것은 음양의 부호로 점을 치는 역술의 이치가 아니라, 삶의 변화 이치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시간과 공간의 변화에 따른 인간 처세의 바른 도리를 공자는 꿰뚫은 것이다. 모든 존재는 우주의 축소판으로, 존재의 현상적 이치와 온 우주를 관통하는 하늘의 도리는 서로 통하는 접점이 있다. 도리에 맞는 삶이 영원한 진리에 이르는 유일한 길이다. 진리에서 벗어난 사람은 일시적으로 크게 흥한 듯이 보일지라도, 결국에는 참혹한 타락으로 막을 내리게 되어 있다.

AI시대에 수행이 의미를 갖는 점은 만물의 다양성과 통일성을 통찰하는 마음의 눈을 뜨게 하는 데 있다. 수행을 크게 보면, 물질과 정신의 양대 측면으로 나눌 수 있다. 인간의 정신을 위해 물질을 조화롭게 융합하기 위해서는, 정신세계와 물질세계의 상관관계를 근본적으로 이해해야 한다. 수행은 물질과 정신의 이해로부터 시작해서, 미시세계와 거시세계, 표면과 이면, 음(陰)과 양(陽) 등의 양극적 관계의 모순을 조율해서 회통(會通)하는 몸과 마음 그리고 삶의 총체적인 활동이다.

수행의 첫 단계는 몸을 이해하는 데서 시작한다. 육체는 뼈, 근육, 지방, 혈액, 신경 등을 구성하는 미세한 세포로 이루어져 있다. 세포는 인체 조직에 따라 일정한 재생주기가 있다. 위장세포는 2시간 30분마다, 신경세포는 7년마다 새롭게 바뀐다. 역(易)의 괘(卦)가 6개의 효(爻)로 구성된 것은 만물이 6단계의 변화를 거치기 때문이다. 7단계는 새로운 구체적 상황으로 전환하기 전에 일순간 머무는, 영적인 상태에 해당하는 중간 영역이다. 인간의 생명변화로 치자면, 죽어서 새로운 몸을 받기 전인 중음(中陰)의 단계다. 역(易)은 물질세계의 변화를 상징하는 암호체계다. 따라서 비가시적인 세계를 상징하는 7효는 없다.

물질 성분으로 구성된 몸은 자연의 일부로서 물질세계의 법칙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러므로 자연의 생명흐름에 순응할 때, 인체는 생기를 유지하게 된다. 음양이 순환하는 이치를 따르는 것이 건강에도 좋다. 계절로는 봄과 초여름에, 하루 중에는 오전에 양기를 돋우는 활동을 주로 하고, 가을과 초겨울, 그리고 오후에는 양기를 거두고 음기로 돌아가 구체적인 정리나 결실에 중점을 두는 것이 순리다. 또한 양기가 상승할 때는 심리적인 활동이 적합하고, 음기가 높아질 때는 생리적인 활동이 적당하다. 그리고 음양의 전환이 크게 일어나는 한낮과 한여름, 그리고 한밤과 한겨울에는 심신의 안정과 휴식을 취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한편 우리의 정신은 비좁은 육체에 갇혀 있고, 생리적 변화에 크게 영향을 받고 있다. 이 때문에 우주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암흑에너지와 연결될 수 있는 의식의 통로가 우리 내부에 있지만,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통로가 막혀있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심리와 생리에 투영된 자의식과 분별의식이 무의식 저편의 본심(本心)을 가리고 있다. 우리의 의식은 폭류(暴流)와 같기 때문에, 너무 거칠고 힘이 강해서 멈추기 힘들다. 또한 관념에 매인 정신은 대부분 작용과 반작용의 물질세계의 법칙에서 예외가 아니다. 어떤 생각, 감정, 느낌 등이 일어나면, 그에 반응하는 또 다른 생각, 감정, 느낌 등이 연쇄적으로 증폭된다. 따라서 현재의 의식 상태에서 청정한 본래 의식으로 돌아가려면, 의식작용 속에도 원심력과 구심력이 작용하는 역(易)의 이치를 이해해야 한다.

서로 다른 몸과 개별의식이 만나는 우리의 삶은 더욱 복잡한 변화의 흐름을 보인다. 우리가 머무르고자 하는 곳은 불행히도 영원한 안식처가 아니다. 에머슨(Ralph Waldo Emerson)의 표현을 빌리자면, 우리의 ‘정박지는 유사지(流砂地)’에 불과하다. 사람들은 세상에서 나름의 이상향을 건설하려고 노력하지만, 그 이상향은 잠시의 신기루일 수밖에 없다. 이 점에서, 세상의 불완전한 변화가 인간 존재에게 주는 의미를 근본적으로 성찰해볼 필요가 있다.

움직인다는 것은 만물의 균형이 불완전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불완전한 상태에서 만물은 다람쥐 쳇바퀴와 같은 순환적 전환을 거듭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삶을 지속해야 하는 이유는, 변화의 고통을 이겨내는 과정을 통해, 물질적 변용을 초극한 정신을 얻고자 함이다. 역(易)이 주는 교훈처럼, 우리는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의 자세로 몸과 마음과 삶을 조금씩 정화(淨化)시키는 수밖에 없다. 삶 자체가 수행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완전하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이 작게는 개인의 삶을 개선시키고, 크게는 인류문명을 발전시킨다.

수행문화전문가 = 서동석 박사 eastosuh@daum.net

고려대학교 대학원 영문학과를 졸업(문학박사)했고, 현재 에머슨하우스 교육연구소 소장이다. 서남대학교 영문학과 교수, (재)대상문화재단 이사 겸 동천불교문화재단 상임이사 겸 반야연구소 소장, 고려대학교, 광운대학교, 단국대학교 강사 등을 역임했다. AI시대 융합문명사회를 준비하는 차원에서 인간교육과 수행에 관한 집필과 연구개발을 주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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