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체크=박용설 역사칼럼니스트] 서기 79년 8월24일 평화로운 아침이었다. 부유한 항구도시 폼페이의 시민들은 평소처럼 시장을 거닐고 목욕탕에서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그러던 오후1시경 베수비오산이 갑자기 지축이 흔들리면서 거대한 폭발음과 함께 분화를 시작, 하늘을 뒤덮는다.
엄청난 지진과 화산재, 화산가스등으로 인하여 도시는 공황상태에 빠졌고 일부는 사력을 다해 탈출을 시도한다.
18시간동안 쏟아진 화산재는 폼페이를 모두 덮어버려 흔적조차 찾을수 없게 되었다.
도망치던 사람들, 철없는 아이들, 주인을 지키던 개까지... 모든 것이 그대로 화석이 되었다.
마치 시간을 박제한 것 처럼...
230km 떨어진 로마, 아피아가도를 쉬지 않고 달려온 전령이 폼페이 화산폭발 소식을 전한다. 그러나... 로마 정부가 할수 있는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200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이 비운의 도시에서 로마인들의 일상을 고스란히 만날 수 있다.
벽화속에 연인들의 미소, 빵집에 남은 숯덩이가 된 빵, 반려견을 많이 키웠는지 케이브 카넴(개조심)이란 귀여운 모자이크가 있는 집들도 많이 있다.
외식문화가 발달하여 음식을 조리하는 화덕과 테이블이 있는 식당과 술집등이 줄지어 있고 벽화에는 닭,돼지고기,와인등의 메뉴그림도 보인다.
또 어떤 곳에는 가게주인이 거스름돈을 속여 먹었다는 문구도 발견되어 우리를 미소짓게 한다.
번화가에 줄줄이 늘어선 술집에서 메뉴 벽화를 보며 문득......
폼페이 주당들도 와인을 마시며 2차,3차까지 갔을까?
통행량이 많아 마차 바퀴자국이 깊게 파인 도로에는 횡단보도가 설치되어 있어 오가는 행인들의 안전까지 생각하였다.
시가지 구석 골목까지 모두 견고한 석재로 포장되어 있어 현대에 버금가는 그들의 야무진 건축 솜씨에 다시 한번 감탄한다.
빗물이 고이지 않게 살짝 경사진 도로와 보행자를 위해 약간 높게 만들어진 인도등 지금 봐도 참 센스있다.
폼페이 사람들은 사통팔달로 발달된 도로와 항구까지 있어 각처에서 생산된 농수산물 및 공산품이 원활하게 유통되는 상업도시로 번성하였다.
시내 여러곳의 공공목욕탕은 로마 사회에 중요한 문화 공간이었고 사람들은 여기서 목욕을 하며 사회적교류를 나누었다. 이러한 시설은 무료 또는 저렴한 요금으로 누구나 이용할수 있었으며 위생을 유지하는데 필수적이었고 수인성 질병 예방에도 큰 역할을 하였다.
시내 곳곳에 수많이 설치된 수돗물 긷는곳(분수), 집에서 조금만 움직이면 언제든 이용할 수 있어 생활하는데 불편이 없었고 무료였다. 진정한 SPQR(원로원과 시민을 위한)의 실현이다.
복원한 수도에서는 고대의 물이 잘 나오고 물맛 역시 음용하기엔 부족함이 없었는데....
현대식 수도꼭지는 고대도시와 어울리지 않는 옥의 티.
인구 2만명에 불과한 작은도시 폼페이가 품은 문화시설의 규모는 놀랍다.
5천석 규모의 극장과 2만석의 원형경기장 이라니...
아래 있는 원형경기장은 도시 전체 인구를 수용할수 있다는게 말도 안되는 큰 스케일이다.
극장에서는 다양한 연극과 음악연주,코미디등이 관객을 즐겁게 하였고 원형경기장에서는 검투
사들의 격렬한 시합과 맹수들과의 싸움, 체육대회등 풍부한 볼거리를 제공하여 폼페이 시민은
물론 타지역 사람들까지 모여들어 흥행에 성공했을 것이다.
이는 폼페이가 단순한 소도시가 아닌 로마 부유층의 휴양도시였음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발굴은 현재도 진행형인데 미발굴된 부분에선 어떤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줄까?....
박용설 역사 칼럼니스트 finder5300@hanmail.net
금융회사에 30년간 근무하고 마라톤을 뛰고 있다. 로마사에 흠뻑 빠져 관련책을 섭렵하고 있으며 고대로마의 역사현장에 가서 배우기 위해 로마와 그리스등에서 직접 ‘한달살기’ 체험을 하면서 공부하는 열혈 역사 연구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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