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체크=고영태 국제투자전문가] 2024년 버크셔해서웨이의 포트폴리오 운영에서 가장 눈에 띄는 한 가지를 꼽으라면 현금 쌓기라고 할 수 있다. 버크셔해서웨이는 1분기부터 애플을 시작으로 뱅크 오브 아메리카 등 보유 비중 1위 2위 종목을 지속적으로 매도했다. 그 결과 3분기 말에는 3,250억 달러에 달하는 현금과 현금성 자산을 확보했다. 심지어 자사주 매입까지 중단하면서 불확실성에 대비하는 보수적인 포트폴리오 운영에 집중했다.

이런 와중에도 지속적으로 비중을 늘린 종목이 있다. 버크셔해서웨이는 2024년 3분기부터 최근까지 위성 라디오 방송인 시리우스 XM 홀딩스(이하 시리우스)을 집중적으로 매수하면서 1/3 이상의 지분을 보유한 최대 주주가 되었다. 버핏 클럽에서는 2024년 4분기 버크셔해서웨이의 공시를 중심으로 시리우스에 대한 투자 배경을 짚어 보았다.

버핏, 위성 라디오 또 샀다 ... 누구의 결정일까?

이번에 공개된 버크셔해서웨이의 13F와 Form4 등의 공시에 따르면 워런 버핏은 지난 3분기 위성 라디오 회사인 시리우스의 지분을 대거 매수한 이후 최근까지도 지분을 계속 늘린 것으로 확인됐다. 마켓 워치(Market Watch)에 따르면 버핏은 올해 2월 3일을 기준으로 약 1억 1,978만 주, 시리우스의 전체 지분의 35% 정도를 보유한 최대 주주로 나타났다. 2대 주주인 뱅가드 6.6%보다 5배나 많은 물량이다.

출처: whalewisdom.com

실제로 버크셔는 지난 3분기에 시리우스의 주식 9천187만 주를 추가로 매수해 1억 516만 주로 보유 비중을 크게 높였다. 하지만 지난해 9월에 30달러 중반에 머물던 시리우스의 주가는 올 2월 초에는 20달러 중반까지 하락했다. 지금까지 주가 흐름을 보면 대략 18% 정도 하락률을 기록하고 있다. 정확한 매수 단가를 알 수 없지만 현재까지 주가 흐름을 보면 시리우스에 대한 투자는 이익보다는 손실을 기록했을 가능성이 높다.

출처: Seeking Alpha

유튜브나 스냅챗과 달리 MZ 세대에게 구시대 미디어로 인식되는 위성 라디오에 대규모 투자를 결정한 사람은 누구였을까? 버핏이었을 수도 있고 버핏과 두 후계자의 합작품일 수도 있지만 현재로서는 확인할 방법이 없다.

방송이 광고를 독과점하던 20세기에 버핏은 미디어에 대한 투자를 선호했다. 버핏은 방송사를 또박또박 통행료를 징수하는 유료 교량에 비유하면서 뉴욕의 캐피털시티즈/ABC에 투자해 막대한 이익을 거둔 경험이 있다. 하지만 버핏은 2022년 파라마운트 글로벌 투자에서 큰 손실을 기록한 이후 미디어 기업에 대한 투자를 꺼려왔다.

투자 전문지 배런스는 이번 시리우스 투자는 버핏의 후계자 가운데 한 사람인 테드 웨슐러(Ted Weschler)가 주도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웨슐러는 버크셔에서 일하기 전부터 시리우스의 모회사인 리버티 미디어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런 점으로 미뤄 배런스는 버핏의 후계자로 약 200억 달러에 달하는 자산의 운용을 책임지고 있는 웨슐러가 시리우스에 대한 투자를 주도했다고 전했다.

1,350만 구독자 팟캐스트 퀸과 계약

시리우스는 지난해 8월에 팟캐스트의 여왕이라고 불리는 알렉스 쿠퍼(Alex Cooper)와 1억 2,500만 달러짜리 계약을 맺은 이후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버크셔해서웨이가 시리우스를 집중적으로 매수하기 시작한 시점도 지난해 3분기였다. 쿠퍼는 1,350만 명의 구독자를 거느린 콜허대el(Call Her Daddy)라는 팟캐스트의 진행자이자 포브스가 선정한 가장 영향력 있는 30대 이하 젊은 리더 30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그녀는 또 언웰 네트워크(Unwell Network)라는 팟캐스트 브랜드 사업도 운영하고 있다. 언웰 네트워크에는 구독자가 100만이 넘는 유명 인플루언서들이 다수 포함돼 있다. 특히 이번 계약에는 시리우스가 3년 동안 콜허대디를 포함해 언웰 네트워크가 보유한 5개의 인기 팟캐스트 프로그램을 독점적으로 방송할 수 있는 권리가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팟캐스트의 여왕으로 불리는 알렉스 쿠퍼(왼쪽)와 계약한 위성 라디오 주식을 대거 사들인 위렌 버핏(오른쪽)

출처:www.fortune.com


포천 등은 3,400만 명의 구독자를 보유한 시리우스가 MZ 세대의 우상인 알렉스 쿠퍼의 영입을 통해 기성세대 위주의 구독자층을 MZ 세대로까지 확대하려는 전략으로 평가하고 있다. 실제로 시리우스는 전에도 비슷한 전략을 활용해 커다란 효과를 거둔 경험이 있다. 시리우스는 2006년 5억 달러를 주고 유명 방송 진행자 하워드 스턴(Howard Stern)과 5년 계약을 체결해 1년 만에 구독자 수와 매출을 배 이상 늘렸다.

하지만 유명 인플루언서의 영입을 통한 구독자 기반 확대 전략이 기대만큼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는 부정적 시각도 만만치 않다. 시리우스는 유료 오디오 서비스 업계에서 아직 선두를 유지하고 있지만 스포티파이와 유튜브 등의 추격으로 입지가 점점 좁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시청 시간 점유율을 보면 2위인 스포티파이가 20%를 차지하면서 21%인 시리우스를 바짝 추격하고 있고 유튜브도 15%로 점점 점유율을 늘리고 있다. 특히 대규모 자본을 앞세운 애플이나 유튜브가 구독료를 낮추거나 비슷한 가격으로 여러 서비스를 묶어 제공하는 번들 상품을 강화하면 시리우스의 경쟁력은 더욱 떨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실제로 스포티파이는 24년 3분기 기준으로 이전 1년 동안 유료 가입자가 2,600만 명이나 증가했지만 시리우스는 34만 명 감소했다.

출처: 시리우스 XM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버크셔의 시리우스 투자는 디지털 미디어 기업에 대한 ‘담배꽁초’ 투자라고 평가하는 매체도 있다. 즉, 시리우스의 성장 잠재력보다는 시장 가격이 기업의 실질적 가치보다 현저하게 낮은 기업에 투자해 단기적인 수익을 노리는 것이다. 실제로 시킹 알파의 가치평가 지표를 보면 시리우스의 선행 PER은 8.5배 수준으로 섹터 중간값인 14.99보다 훨씬 낮고 PBR도 0.74에 불과하다. 반면 지난해 4분기에는 21억 9천만 달러의 매출과 0.83 달러의 주당 순이익을 기록해 시상의 예상치를 넘어섰다. 연간 잉여현금흐름도 10억 달러 이상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해 연간으로는 일회성 비현금 손상 비용 때문에 20억 7,500만 달러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출처: Seeking Alpha

웨슐러는 재무 분석가로 투자 업계에서 일을 시작해 사모 펀드에서도 일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파이낸셜 타임스에 따르면 웨슬러는 버핏보다 더 다양한 종류의 주식을 사고 보유 기간도 짧게 가져간다고 한다. 2010년 이후 버핏의 평균 보유기간은 4년 3개월이었지만 웨슬러는 2년 10개월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

새로 산 종목과 처분 종목은?

이번 분기 버크셔는 콘스텔레이션 브랜드 한 종목을 새로 매수하고 울타 뷰티 등 3종목을 전량 매도한 것으로 확인됐다. 또 옥시덴털 등 5종목은 보유 수량이 늘었고 뱅크 오브 아메리카 등 8종목은 보유 비중을 줄였다.

버크셔는 콘스텔레이션 브랜드(Constellation Brands)의 주식 562만 주를 12억 4,300만 달러를 주고 매수한 것으로 확인됐다. 콘스텔레이션 브랜드는 맥주, 와인, 증류주를 제조 유통하는 미국 주류 회사이다. 컨스텔레이션 브랜드는 코로나(Corona)와 모델로(Modelo) 같은 유명 맥주 브랜드뿐만 아니라 로버트 몬다비(Robert Mondavi) 와인 등 100여 개의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다.

지분을 100% 처분한 종목은 울타 뷰티, SPY, VOO 3개 종목으로 확인됐다. 버크셔가 미국 S&P 500을 추종하는 대표적인 ETF인 SPY와 VOO를 전량 매각한 것을 볼 때 버핏은 미국 시장이 여전히 고평가 상태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또 다른 매도 종목인 울타 뷰티는 미국 최대 뷰티숍으로 3분기에 새로 편입돼 언론의 주목을 받았지만 불과 3개월 만에 모든 지분을 정리한 것으로 나타났다. 장기 투자로 유명한 버핏이 이렇게 급하게 지분을 전량 매도한 것은 상당히 이례적이다. 현재로서는 그 이유가 무엇인지 알 수 없다. 버핏은 지난 2023년에도 TSMC를 한 분기 만에 전량 매도한 적이 있다. 그 당시에는 이유를 밝히지 않았지만, 나중에 연례 주주총회에서 TSMC는 매우 좋은 회사이지만 지정학적 긴장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 보유 비중 상위 10대 종목 가운데 주요 변동 사항을 살펴보면 뱅크 오브 아메리카는 지분을 축소했지만 에너지 기업인 옥시덴탈은 저가 매수에 나선 것으로 나타났다. 뱅크 오브 아메리카는 지난 3분기에 이어 4분기에도 1억 1,740만 주를 추가로 매도해 지속적으로 지분을 줄이는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버핏이 선호하는 옥시덴탈은 주가가 크게 하락했던 12월 말에 890만 주를 매수한 데 이어 2월 초에도 76만 주를 추가로 매수한 것으로 확인됐다.